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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자
2008.01.16 09:2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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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국군발달사-<1>건군의 맥박
[군사기획] - 국군발달사
<1>건군의 맥박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국군창설

2008년은 우리 군이 창군된 지 6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이에 본지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우리 군의 발자취를 되돌아봄으로써 선진 정예 강군으로 거듭날 수 있는 교훈을 찾아보고자 특별 기획으로 '국군발달사'를 연재한다. 편집자

우리 군은 1948년 8월 15일 건국과 동시에 조선경비대 시대를 마감하고 ‘대한민국 국군’의 시대를 맞이했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규군으로의 건군은 뼈아픈 역사의 교훈 위에서 국가보루로서 정예군대를 건설하기 위한 민족적 역량을 총결집하는 과정이었다. 당시 정부 인사들은 그 무엇보다 먼저 튼튼한 군을 세워 국가의 기틀로 삼고 그 위에 정부를 수립하고자 했다.

돌이켜 보면, 일제의 식민 통치는 우리 민족에게 국방력 없이는 민족의 자위는 말할 것 없고 생존권마저도 빼앗긴다는 냉엄한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한말에 주권을 상실하고 민족사의 단절을 가져온 결정적 이유가 힘의 부족이자 결국 ‘국방력의 부재’에 기인한 것이었다는 사실도 분명히 인식했다. 그렇기에 와신상담 8·15 광복 직후부터 노도처럼 분출한 이른바 ‘건군운동’을 기화로 지체없이 국군 창설에 들어갔다.

애초에 미 군정 당국은 한국에 정규군대를 건설할 계획에 미온적이었기 때문에 끈질긴 설득 끝에 ‘경비대에서 국방군’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는데, 국방사령부와 조선경비대의 창설, 그리고 경비대에서 국군으로의 개편과정이 이를 잘 말해 준다. 흔히 건군이라 하면, 군이 국가 기구의 하나로서 육·해·공군의 현대적인 3군 체제를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즉, 46년 창설된 조선경비대가 48년 정부 수립으로 육군과 해군으로 개편되고, 다시 49년 10월 1일 공군이 육군에서 분리 독립함으로써 현대적인 3군 체제로 정립됐다.

그것은 비록 군사력 건설의 작은 토대에 불과했지만, 장차 민족의 영속적 번영을 보장할 ‘대한 강군’의 힘찬 발걸음이었다. 48년 8월 15일 오후 1시 30분. 건군의 감격은 고종 황제에 의해 대한제국군의 마지막 ‘관병식(觀兵式)’이 있은 후 근 50년 만에 재개된 국가 통수권자에 의한 국군의 사열식에서 절정에 달했다.

사열식은 중앙청에서의 정부 수립 국민축하식이 끝난 직후에 광화문 광장에서 바로 시작됐다.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각부 장관, 그리고 육·해군의 장교가 참석한 행사는 약 40분간 진행됐다. 먼저 군악대를 선두로 각 지역에서 선발된 육·해군의 정예부대와 특별부대 순으로 보무당당한 행진이 이어졌다. 정부 수립을 축하하는 국군의 사열식은 한편으로 국군의 출범을 알리는 신고식이나 다름없었다. 50년 4월 또 다른 사열식에서 그 위용에 감격한 미 고문관 하우스만 대위는 이대통령에게 말했다. “대한민국과 각하의 군대입니다(This Army belongs to the ROK and the President).”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하는 국군을 향해 국민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격려와 축하를 보내듯이 민·군 관계의 새로운 전통이 수립되는 순간이었다. 성하의 한여름 오후, 온 국민은 건국을 기념하는 현장에서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갈’ 힘차고 패기에 넘치는 ‘건군의 맥박’을 목도했다.


<백기인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국방일보-2008.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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