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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O_49804
일 자
2013.07.19 13:30:50
조회수
4455
글쓴이
전산통신/보안담당
제목 : 답변입니다.
군사편찬연구소 관리자입니다. 해당 문의사안에 대한 답변입니다.

소련은 1945년 8월 9일 0시를 기해 대일전에 가담합니다.
미국의 요청도 있었고 연합국간 합의사항을 이행한 것이죠.
문제는 미군이 남태평양에서 일본군과 힘겨운 싸움을 할 때, 소련군은 일본 관동군과 싸우기 위해 만주 만이 아니라 한반도에도 진주했다는 점이죠.
그것도 급속도로. 일정을 보면 8월 9일 소련 제25군 예하부대가 청진, 나진, 웅기를 폭격하고,
경흥, 훈춘으로는 지상군을 투입, 13일 청진 상륙, 24일 원산 진주, 평양 진주(공수),
26일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 대장 평양 진주 후 성명서 발표로 진주과정은 일단락되었음

민원인의 확인사항인
1. "1945년 광복 시점 러시아(소련)군의 고성, 양양, 철원 등지에서
일본군에 대항해 우리군과 함께 싸웠다"에 대한 답변
- 시기, 진주 지역 : "소련군은 일본군의 항복을 받고
무장해제를 실시하면서 본대가 평양에 도착하기 전에 전격적으로 남쪽으로 이동하여
8월 25일에는 38도선을 넘어 개성까지 진출하였다. 또 26-28일에는 해주, 신막, 복계, 김화, 화천,
양양까지 이르러 38도선 이북의 거의 전 지역을 점령하였다.
이때 소련군의 1개 소대 병력은 38도선 이남인 춘천에까지 침입하였고,
이 지역 주민들이 ㅣ환영회를 베푸는 등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도정 이양 공작을 하기까지 했다.
또 평강 및 화천에 진주한 소련군은 미군이 춘천에 들어오기(9월 20일)까지 매일 이곳에 내려오곤 하였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 1. 전쟁의 배경과 원인>, 2004, 19쪽) 라는 기술에서 볼 수 있듯이
38도선 이남 지역까지 진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민원인이 요청한 고성, 철원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사료확인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확실한 자료가 있으면 제보 바랍니다.
- 우리군과 함께 일본군과 싸웠다. : 이때 기록한 우리군이란 어떤 군을 말하는 것인지 불명확합니다.
당시 남북한의 정규군은 없었고 임정 산하의 광복군은 소련군과 함께 대일전에 참가하지 않았죠.

2. 1945년 광복 이전 일본을 겨냥해 함흥에 (소련)군 파견기록에 대한 확인
- 식민지 시기 소련군이 함흥지역으로
군대를 파견했다는 기록은 확인안됨
- 개인적 생각으로는 러일전쟁 시기 러시아군(연아무르군관구 소속의 연아무르혼성여단 정찰대)이 함흥, 원산지역까지 내려와 정찰활동을 하기 위해 파견한 사례가 있음(확인 : <한반도에서 전개된 러일전쟁 연구>2011)
군사사 분야에 관심을 가져 주신 점에 대하여 감사드리며, 확실한 자료를 제공해 주시거나,
의문을 제기해 주시면 성실히 응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군사사부




===================== 원본글 내용입니다. =====================

1945년 광복 시점, 러시아군이 고성, 양양, 철원등지에서 일본군에 대항하여
우리 군과 함께 싸웠다는 기록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인터넷 서치로 1945년 광복 전 일본을 겨냥해 함흥(북한쪽) 지역으로 군사를 파견했다는 기록은 보았는데,
남측(그때는 남북한으로 나뉘어 있지는 않았겠지요)에서도 활동을 한 것인지요..
혹시 이곳에 아시는 분이 있을까 남겨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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