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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2 09: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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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제목 : [국방일보]기획-한국군 세계를 가다<12>
<12>베트남전쟁과 제4세대 전쟁교훈 및 역사인식
[첨단 무장 남베트남 무기 아닌 士氣가 승패 갈라 원시 전력 북베트남 호찌민 통로따라 자전거로 이동 북베트남 미군과의 전쟁서 승리강한 정신력·하나된 국민안보의식 천안함 1주기 맞아 마음 다잡아야 한국군 세계를 가다 / 2011.03.22]

미국 해리 서머스 대령의 `전략론'(1982)에 의하면,“1969년 닉슨 행정부가 들어선 후 북베트남과 미국에 대한 모든 자료, 즉 인구ㆍGNPㆍ병력규모ㆍ함정ㆍ항공기의 수효 등을 국방성 컴퓨터에 넣고, `미국이 언제 쯤 이길 수 있겠는가?'를 물었다. 그때, 컴퓨터에서 나온 답은 `미국이 1964년에 승리했다'는 것이었다.” 실상은 어떠했는가. 1964년 8월 2일, 통킹 만 공해상을 순찰 중이던 미 구축함 매독스 함이 북베트남 어뢰정 공격을 받음으로써 미국은 베트남에서 지상군 투입을 포함한 군사행동을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그로부터 전쟁은 10년도 넘게 계속됐고 북베트남은 호찌민 통로를 따라 자전거 등 원시적인 수단으로, 첨단 전력의 미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당시 세계 최강 미국에 대해 북베트남은 국력으로는 비교가 되지 않는 상대이지만 컴퓨터가 측정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국민의 전투의지', 즉 클라우제비츠가 `사기(士氣)'라고 부른 것이야말로 전쟁의 승패를 바꿔 놓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풍자한 것이다. 이념을 떠나 전쟁사적 측면에서 볼 때 베트남전쟁의 교훈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며칠 후 26일은 천안함 피격사건 1주기가 된다. 이 시기를 맞아 우리에게 더욱 요구되는 것은 첨단 군사력과 아울러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된 국군과 안보의식으로 단결된 국민의 성원이다.

베트남 전쟁기념관 내 전시된 유일한 한국군(수도사단 장병) 관련 사진
베트남전쟁은 우리 사회에 하면 된다는 자신감 등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토대 위에 1970년 건설된 경부고속도로

▲베트남전쟁과 북한의 비대칭 위협

베트남전은 제4세대 전쟁이었다. 제4세대 전쟁이란, 정치ㆍ경제ㆍ군사 부문의 모든 가용 네트워크를 동원해 적의 군사력을 파괴해 승리를 달성하는 것보다, 적의 심리를 공격해 전쟁 의지를 분쇄하는 데 있다. 전쟁 수행 방식에 따라 1세대 전쟁은 창과 칼에 의한 병력의 주공 집중을, 2세대 전쟁은 대포와 총에 의한 화력의 집중에, 3세대 전쟁은 전차·포병 등 기동에 의한 전쟁을 말한다. 그리고 제4세대 전쟁은 ‘적의 강점을 회피하면서 최대한 취약점을 공격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력으로서, 일반적으로 첨단·재래식 전력에 대항할 수 있는 게릴라전ㆍ대량살상무기 등을 동원한 전쟁’을 지칭한다.

북한은 6ㆍ25전쟁 정전 이후 끊임없이 지상ㆍ해상ㆍ공중ㆍ해외 등에서 모두 470여 건의 도발을 벌였으며, 3700여 명이 납치되거나 부상 또는 사망했다. 도발 형태도 두 차례의 대통령 암살 기도부터 무장 공비 침투 및 항공기 테러 등 우리의 예측을 벗어나 다양했다. 더구나 1972년 한반도 평화 공존을 다짐하던 7ㆍ4 남북공동성명 시에도 지하에 땅굴을 파고 있었고, 최근에는 핵 실험을 통해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첨단 무기 체계를 과신하거나 적의 위협에 방심하는 것은 큰 재앙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다시 한번 사기가 충만한 가운데 정신전력을 강화해야 하겠다.

▲베트남전쟁과 북한 정세

최근 중동 및 아프리카 발(發) 민주화 바람에 독재국가들이 잇달아 무너지고 있다. 북한에도 비록 이 지역의 상황과는 다르지만 자유세계의 물결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탈북자가 급증해 2만 명이 넘었고, 무엇보다 화폐 개혁의 실패와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에 주민들의 체제 충성도가 크게 약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북한 정권의 급속한 붕괴도 조심스럽게 예측된다. 베트남 전쟁에서 볼 수 있듯 산악 지형에서의 게릴라 전쟁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북한 정권을 핵심으로 비호하는 국가안전보위부(남한의 국정원)ㆍ인민보위부(경찰)ㆍ호위 및 보위 사령부의 4대 공안기관과 북한 인민군 주력들은 북한의 산악지역을 근거지로 장기 저항할 것도 예상된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첨단전력인 무인 항공기기와 팩봇(PacBot : 미군의 폭발물 처리 로봇)이 원시적 전력인 급조폭발물(IED)과 힘겨운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의 안정화작전이 숱한 시행착오로 절반의 성공에 그치는 것에 대한 교훈 분석이 요구된다. 북한의 예기치 않은 사태로 한반도 평화 통일이 갑자기 찾아올 때를 대비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 속 베트남전쟁에 대한 인식전환

오늘날 청소년에게 베트남전쟁은 잊혀져 가는 전쟁이다. 입대 장병들의 고등학교 선택과목인 한국 근현대사에 기술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베트남 파병은 6ㆍ25전쟁 당시 우방이 우리를 지켜준 데 대해 보답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이뤄졌다. 그 대가로 경제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차관을 들여오고, 파병된 군인들의 송금과 군수품 수출, 베트남 건설사업 참여로 어느 정도 외화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인들에게 끼친 피해와 파병된 한국군의 희생 또한 적지 않았다. 베트남전쟁 참전으로 한국과 미국 간의 정치·군사적 동맹관계는 더욱 강화됐다.”

이러한 역사 서술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전쟁 참전에 대한 명분과 국익보다는 경제 개발, 송금, 수출 등 경제적 이익과 피아 식별이 불가능했던 게릴라전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가해자라는 인식을 심어 줄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역사 교육은 이런 방식으로 개선돼야 한다. 즉, “한국군은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역사상 최장·최대인 8년 6개월 동안 베트남전쟁에 32만여 명이 참전했다. 이는 6ㆍ25전쟁 당시 우방이 우리를 지켜준 데 대해 보답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이뤄졌다. 이로써 한미 안보동맹 관계는 더욱 강화됐고, 국군의 현대화로 자주 국방력 강화의 초석을 다졌으며, 군수품 수출과 건설 사업 참여 등 해외진출 경험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의 계기가 됐다. 이는 오늘날 한국이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던 디딤돌이 되었다.”

북한에 대해 군사ㆍ경제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시기가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부터라는 것을 아는 세대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한국 현대사의 올바른 역사 인식이 절실하다.

한편 과거에는 비록 서로가 총을 겨눈 상대였지만 현재 및 미래를 향한 평화의 동반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소중한 역사 흔적 보존 및 전사 연구와 함께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공동노력이 요구된다. 필자는 최근 베트남을 방문했다. 그리고 한국군 참전 지역의 많은 민사심리전 기념물인 팔각정, 기념비 등이 훼손되거나 변형된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구호 활동, 태권도 교육 등 베트남 주민들을 위한 긍정적인 활동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베트남 전쟁기념관 내의 전쟁 관련 많은 사진 중 한국군 관련 사진은 단 한 장에 불과하다. 6ㆍ25전쟁 참전자를 포함한 베트남전쟁 참전자에 대한 예우가 참전 수당의 인상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전쟁영웅보다 폭염과 정글의 숱한 역경 속에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던 참전 장병들의 명예를 선양해야 한다. 또한 고엽제 피해자들이 우리 사회의 복지 사각(死角)지대에 놓여 있거나, 자손인 2·3세까지 대물림하는 것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오홍국 군사편찬연구소 해외파병사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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