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미국은 베트남 상화의 악화에 따라 점진적으로 전투 병력을 증강하였다, 즉 베트남 전쟁의 미국화 추진으로 베트남전쟁에 개입하였다.

제2차 베트남전쟁과 춘계공세(1972)

1968년 1월 뗏 공세 이후 5월에 시작된 파리 평화협상은 진척이 없었다. 그러나 국내의 반전여론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던 미국은 마냥 시간을 끌 수 없었다. 1969년 1월 25일부터는 “NLF를 평화협상 당사자로 포함시키자”는 북베트남의 요구를 받아들여 사이공 정부를 포함하는 4자회담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회담의 진전은 제자리였다. 지지부진한 회담을 타개하기 위해 1969년 8월부터 닉슨의 안보담당 보좌관인 키신저(Henry A. Kissinger)와 하노이 정부의 정치국원 레둑토(Le Duc Tho)가 비밀회담을 계속했다. 그러나 양측의 입장이 너무 달라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국의 주장은 현 상황을 기초로 대안(代案)을 강구하는 것이었지만, 하노이 정부는 남베트남에서 모든 외국군의 철수와 불법단체로 간주했던 티에우 정부의 해체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양측의 견해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하노이 정부는 또 다시 무력에 의한 해결을 시도 했다. 북베트남은 1972년 3월, 12개 사단을 투입해 ‘춘계공세’를 감행했다. 닉슨은 곧 북폭으로 맞으며, 성역으로 간주하고 있던 하노이 폭격까지 감행했다. 닉슨이 하노이 폭격을 승인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과 긴장완화를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었다. 1972년 2월, 닉슨이 베이징을 공식방문하고, 이어서 5월에는 소련을 공식 방문했다. 그 같은 닉슨의 폭넓은 정상외교 활동으로 미국은 하노이측을 보다 강하게 압박할 수 있었다.

북베트남군의 ‘춘계공세’

북베트남군의 ‘춘계공세’

북베트남군은 4개 사단(제304·308·324·711사단)을 DMZ를 연한 북부지역에, 3개 사단(2·3·320사단)은 19번 도로를 연하여 중부지역에, 4개 사단(1·5·7·9사단)[1]은 사이공을 중심으로 공격하였다.

북베트남군의 지상 공격은 베트남전쟁 개전이래 가장 대규모의 공세로 끝내기 숭부수였다. 더구나 베트남전쟁의 베트남화에 따라 당시 미군의 병력은 총 8개 대대 95,500여 명이었다.

특히 중부 지역 수도사단의 작전 지역인 안케고개의 638고지 전투는 한국군 최대의 격전이었다. 미군은 엄청난 폭격으로 북베트남군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1]여기에서 제1사단은 북베트남군, 5·9사단은 민족해방전선, 제7사단은 북베트남군과 민족해방전선의 혼성군으로 편성 되었다.

‘춘계공세’의 영향

미국의 의지와 세계정세 변화를 실감한 하노이 지도자들은 “무엇보다도 미군의 철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10만 여 명의 북베트남군 손실에도 불구하고 1968년의 뗏 공세처럼 정치적 성과는 북베트남에 있었다. 특히 남베트남군의 전력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고 미군의 지원없이 단독 작전은 불가하다는 패배의식이 팽배해 졌다.

미국 또한 종전에 대한 압박으로 1972년 7월, 파리 평화회담이 재개되었다. 그리고 10월 8일, 하노이 대표는 평화협정 발효 시점을 기준으로 NLF의 지배지역을 인정한다는 조건과 함께 ‘티에우 정부의 존속’을 최초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10월 21일에는 협상초안이 거의 완성되었다. 그러나 티에우가 완강히 저항했다. 닉슨은 그를 달래기 위해 다량의 최신무기를 제공하면서 휴전 후 재건을 위한 상당량의 원조를 약속했다.

이번에는 하노이가 티에우 정부에 대한 미국의 무기제공을 트집 잡아 11월에 재개된 협상은 12월에 결렬되고 말았다. 닉슨은 또 다시 하노이 및 하이퐁 지역에 대규모 폭격을 단행해 하노이 대표를 회담장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1973년 1월 8일부터 협상초안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한편 닉슨은 대통령 특사를 사이공에 보내 티에우를 설득했다. 티에우 역시 거의 모든 것을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는 입장에서 더 이상 미국의 요구를 거절 할 수 없었다.

※ ‘춘계공세’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 ⓛ 유제현, 『월남전쟁』, 한원, 1992, pp. 331∼352
  • ② 최용호, 『한권으로 읽는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4, pp. 109∼111. pp. 354∼363(안케고개 전투)
  • ③ 베트남 인민군대출판사·이미선 역, 『항미전쟁의 종결』, 국방부 군사편찬연 구소, 2009, pp. 63∼78
  • ④ George C. Herrring, 'The Easter Offensive' America's Longest War, fourth ed. 2002, pp. 30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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