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태(이병태)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1106683
  • 전몰일자 : 19510104

공훈사항

이병태 일등중사는 경기도 개풍군 봉동면 삼금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조국은 분단되어 있었고, 정부 수립 준비로 사회가 혼란스러웠던 1948년 5월 중순, 경기도 양주군의 제1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제1연대는 제7사단에 예속되어 동두천 북방에 배치되어 있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남침을 감행했을 때, 이병태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연대는 동두천 북방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했으나, 역부족으로 의정부를 거쳐 창동으로 철수하여 한강방어선에 배치되었다. 이후 수도사단 예속부대로서 지연전과 낙동강방어선전투를 치루던 중 제11사단 창설 요원으로 차출되었다.
이병태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1사단은 1950년 8월 27일부로 창설하고 9월 25일부로 편성을 완료했다. 사단 예하 3개 연대는 공비토벌작전 임무를 부여받고 제9연대가 경남에, 제13연대가 전북에, 제20연대가 전남 지리산지구에 각각 분산 배치되었다. 그는 사단 직할부대인 수색대로 배치되어 주로 주보급로 및 주요시설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제11사단은 1950년 10월 10일 대구를 출발하여 10월 14일 남원에 도착했다. 사단은 공비토벌작전을 크게 3단계로 구분하여 수행했다. 제1단계 작전은 1950년 10월 1일∼10월 25일까지로 적정 수집 및 소규모 토벌작전을 병행한 시기였다. 제2단계 작전은 1950년 11월 1일∼12월 31일까지로 이 작전기간은 소위 ‘견벽청야(堅壁淸野’작전 개념에 입각해 산간벽지에 있는 민간인들을 소개하고 공비들의 보급로를 차단해 적을 기아 상태에 몰아넣는 작전이었다.
이병태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1사단은 제1, 제2단계 작전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하고, 1951년으로 접어들면서 제3기 작전에 집중했다. 이 기간에 공비들은 중공군 공세에 힘입어 지역별 연대를 이루며 약탈․납치․방화․기습 등의 활동을 적극 실시했다. 이에 사단은 공비의 근거지를 파괴하는 데에 전 병력을 집중했다.
이병태 일등중사가 소속된 사단 수색중대는 작전지역에서 은밀히 활동하는 적 침투부대를 탐색하는 작전을 실시했다. 그러던 중 1951년 1월 4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북한군 패잔병들과 조우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태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351국)를 추서하고, 그의 위패(23판-4면-1275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ㅍ-06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