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태(李炳泰)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17534
  • 전몰일자 : 19530617

공훈사항

이병태 중위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춘계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4월 중순경, 경상남도 동래에 위치한 육군종합학교로 입교하여 소정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9월 초순경 소위로 임관하여 제5사단 제27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태 중위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제5사단은 중공군의 5월 공세 때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하면서 캔자스선으로 진격하여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그 후 美 제10군단의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 시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8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 강원도 양구 일대 가칠봉 부근 전투를 완수한 후 10월 20일 가칠봉-서희령을 잇는 전선을 제3사단에 인계했다. 이후 사단은 육본직할로 전환되어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하면서 인근 지역의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병행하고 있었다.
사단은 1952년 1월 13일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월 23일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면서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방어하게 되었다. 7월 10일 적 제9사단의 기습공격에 아군은 적에게 동 고지를 탈취당했으나 제27, 35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3일간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이 고지를 탈환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4월 15일부로 제2군단에 배속되어 강원도 철원군 김화지역의 제3사단 전선을 인수받아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하게 되었다. 이에 이병태 중위의 제27연대는 우측 전방 883고지 일대에 투입되면서 주진지 및 전초진지 보강을 실시했다.
마침내 중공군은 6월 10일 제60군 3개 사단을 투입하여 인해전술을 펼치며 파상적인을 공격 가해 왔다. 사단은 제3사단 제22연대를 배속 받아 6월 15일까지 혈전을 거듭했으나, 결국은 적에게 주저항선을 빼앗기고 북한강 동·서안의 등대리-후동-널우골을 잇는 선에서 新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병태 중위는 연대 작전장교로서 화천북쪽 등대리 일대 방어진지 보강 실태를 확인 중 6월 17일 적 침투부대와 교전하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태 중위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7판-8면-12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6-ㅍ-035)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