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태(李炳泰)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81293
  • 전몰일자 : 19510501

공훈사항

이병태 하사는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0년 12월 30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철수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고,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 중인 상황이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사단 장병들은 북한군 제2사단을 맞아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당하자, 1951년 1월 2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봉화군 춘양으로 이동하여 1월 14일부터 22일까지 영월 동남쪽 남대리 부근에서 침투한 적 제31사단을 포위 격멸했다.
2월 5일 미 제10군단이 라운드업 작전을 전개하여 반격을 했고, 이때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2월 10일 횡성 동북방의 제5사단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횡성-원주 축선에 전력을 집중하여 2월 공세를 감행했다. 횡성 동북방에서 공격하던 사단은 중공군 제197사단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혈전을 벌이면서 적의 전진을 저지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3월 7일부터 31일까지 리퍼작전(Operation Ripper)을 전개했다. 이때 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공격을 전개했고, 사단은 평창군 하진부리, 유천리 일대를 점령하고 계속 공격하여 3월 27일 경강국도 상의 강원 인제군 현리-하서림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은 4월 3일부터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러기드작전(Operation Rugged)을 개시했다. 이때 제3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적의 가벼운 저항을 물리치고 북진했고, 4월 20일까지 강원 인제군 한계리 일대까지 진출하여 캔자스선을 확보했다.
4월 22일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사단 정면에는 북한군 제6사단이 투입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4일 동안 치열한 백병전을 전개한 끝에 기어이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적정을 탐색하며 앞장서서 공격해 나가다가 적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5월 1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5판-2면-18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ㅈ-09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