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태(李炳泰)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5203908
  • 전몰일자 : 19501014

공훈사항

이병태 하사는 경기도 인천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5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하였으며,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칠곡군 가산면 일대에서 다부동 전투를 수행하였다. 당시 북한군은 제1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지역에 5개 사단을 집중해 집요한 공세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가 소속된 연대는 북한군과 대치하면서 달려드는 북한군을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방어하였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편성에 주력하였다. 대구 북쪽 16km에 위치한 가산(902m)은 중요한 감제고지로서 다부동-대구 간 도로와 대구까지도 감제하는 전술적으로 중요한 고지로써 가산을 탈환하여야 하였다. 사단은 기병사단과 협조하여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주며 9월 14일에는 가산성 가장자리까지 진출하였다.
낙동강에서의 역사적인 반격작전은 1950년 9월 16일 오전 9시에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계속된 비로 예정되었던 공중지원이 취소되었으나 이병태 하사와 연대병력은 중앙의 계곡 접근로와 동측방의 군위로 이르는 도로를 이용하여 신속히 북서쪽으로 이동하였다. 이어 9월 22일 유학산 북방의 중요지형인 천생산을 점령하고 적을 소탕한 데 이어 대구에서 상주로 나아가는 도로상 옥골까지 진출하였다. 이후 이 하사와 장병들은 충북 보은지구에 잔류하여 잔적을 소탕하던 중 10월 7일 이동을 개시하여 안성-서울을 거쳐 임진강 북안의 고랑포로 진출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언제나 선두에 서서 용맹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병태 하사는 1950년 10월 14일 신계리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5판-1면-18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2-ㅁ-02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