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태(李炳泰)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41109
  • 전몰일자 : 19520828

공훈사항

이병태 하사는 경기도 김포군(現 김포시) 대곶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1951년 1월 중순경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태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횡성 일대의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등에 투입되어 중공군 춘계 공세를 막아 내면서 적의 종심기동을 저지했다. 5월 하순 공세로 전환한 사단은 군단의 우측 전방 부대로 5월 31일에 중공군 제2군단을 추격하다가, 6월 4일 원통 북방 서화리 일대의 후덕리-981고지-산두곡산(1,019고지)을 향해 공격하여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8월에 접어들어 美 제10군단은 강원도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이병태 하사가 소속된 제36연대는 8월 16일 오전 8시 부로 美 제2사단에 배속되었다. 연대는 캔자스선 진지를 감제하며 위협을 주는 양구 북방 983고지-940고지-773고지를 잇는 ‘피의 능선(Bloody Ridge)’을 美 제9연대와 공격하여 9월 7일 목표를 탈취했다. ‘피의 능선’을 점령 후 제36연대가 복귀한 제5사단은 연대별 또는 3개 연대로 양구 일대 가칠봉 북쪽의 1,211고지를 10월 9일까지 공격하여 세 번씩이나 목표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적의 역습에 이를 상실하고 결국 사단은 10월 14일 가칠봉 부근 전투를 종결하고 부대 재편성에 착수했다.
그 후 사단은 양양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하면서 수색정찰 및 매복 작전에 전념하다가, 1952년 1월 23일부터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전선방어에 투입되었다. 전선은 7월 초순까지 소강상태가 지속되다가, 마침내 적 제9사단이 7월 10일 야간 10시에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전초진지인 351고지를 집중 공격하여 진지가 피탈되었다. 사단은 즉각 역습으로 주방어선을 지켜냈으며, 11월 초까지 몇 차례의 소규모 침공을 격퇴했다. 이병태 하사는 351고지를 재탈환 후 8월 28일 분대원을 진두지휘하며 소대 규모의 적과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태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41묘역-2판-1549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4-ㅎ-084)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