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택(李炳澤)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6025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병택 일병은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시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음에도 정치 및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9년 10월 중순, 서울 용산의 제1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제7사단에 예속되어 있다가 1950년 4월 19일에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고, 사단의 예비로서 교육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전면 남침을 했을 때, 제19연대는 아침 7시경에 비상을 걸어 출동준비를 했다. 이병택 일병은 처음에는 비상이 걸린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얼마 후 최전선에서 북한군의 침략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연대장은 참모학교에 교육 중이어서 부연대장이 직무를 대행하고 있었다. 또한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장병들은 외출 및 외박을 나가 영내에는 일부 병력만 남아 있었다.
이병택 일병이 소속된 제3대대는 외출과 외박을 적극적으로 실시하라는 상급부대 지시가 있었음에도 외출하지 않고 영내에 대기하고 있다가 전방투입 출동명령을 받았다. 그가 소속된 제3대대 장병들은 연병장에 집결하여 개인별 1기수의 탄약과 함께 충분한 양의 보급품을 지급받고, 연대수색대와 함께 연대에서 보낸 차량에 분승하여 오후 1시에 원주를 출발했다. 차량은 영월광업소에서 징발한 5대를 포함하여 20대로서 제3대대 장병들만 탑승할 수 있었다. 한편 외출에서 복귀한 제1, 제2대대 장병들은 기차로 저녁 8시에 원주역을 출발하여 청량리를 경유하여 춘천역으로 향했다.
이병택 일병이 소속된 제3대대 장병들이 저녁 8시에 춘천에 도착했을 때, 북한군은 시내 곳곳에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전황이 긴박하다고 판단한 대대장은 이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제7연대와 긴밀히 협조하여 춘천 남쪽 지역에서 병력을 하차시킨 후 급속행군으로 이동했다. 춘천역을 돌아 북한강을 건넌 대대는 밤 11시경에 북한강 서안의 금산리 북쪽 1.5km 지점 217고지 일대에 병력을 배치하고 화천에서 남하하는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했다. 북한군은 제3대대의 배치를 알고 공격을 퍼부었다. 대대 장병들은 북한군의 강렬한 공세에 맞서 용감하게 전투함으로써 춘천방어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이날 전투에서 이병택 일병은 전투력이 월등히 우세한 북한군에 맞서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9판-8면-18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ㅇ은 전사자 명비(037-ㄲ-08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