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택(李炳澤)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8200257
  • 전몰일자 : 19500730

공훈사항

이병택 일병은 전라북도 완주에서 1927년 10월 27일에 출생하였다. 이 일병은 1949년 7월 1일에 입대 후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제8사단은 강원도 인제군으로부터 양양군 일대에 이르는 지역에서 38도선의 경계를 담당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이른 새벽 38도선을 지나 국군의 기지를 공격하며 기습남침을 강행했다. 제8사단은 1950년 6월 26일과 27일에 제21연대의 증원이 축차적으로 도착하여 주문진 탈환을 위한 반격을 준비했으나, 적의 공격으로 방어선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제8사단은 계획적인 철수를 단행하였다.
이 일병이 속한 제8사단은 원주군으로 철수하려는 도중 적이 횡성을 점령하여 평창으로 진로를 변경하고 1950년 7월 2일 제천에 도착해 의림국민학교에 전투지휘소를 설치하여 부대를 정비하는 동시에 제천을 향하여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도로상의 교량을 폭파했고, 제8사단은 집결과 정비를 위해 충주지역으로 이동을 실시하였다.
피아간에 전투가 전개됨에 따라 제8사단과 북한군의 방어진지 공방전이 계속하여 일어났다. 북한군은 1950년 7월 10일 전선에 2개 연대 병력을 증원 투입시켜 제8사단의 진지에 공격을 가했고 제8사단의 방어진지는 붕괴되었지만 UN군의 도움에 북한군의 2개 중대에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 북한군은 국군의 제8사단의 우측으로 우회하여 풍기 방면으로 진출할 기세였고, 각 연대를 공격하였다. 이때 국군은 사단 사령부를 옮기며, 포병대 또한 죽령으로 철수하여 남하하는 적에 대비해 방어진지를 강화하였다.
제8사단 장병들은 북한군의 탐색공격에 대비 방어진지를 견고하게 다지는 한편, 공격하달명령을 대기 중인 적군을 향해 포격을 하곤 했다. 북한군은 1950년 7월 21일, 영주를 침공할 계획을 하고 있었고 적군의 정찰대가 계속하여 탐색작전과 공격을 진행했다. 다음날 북한군은 트럭 20대로 병력을 급증시켜 아군 거점을 점령하려 하였고 제8사단은 격퇴하고자 했지만 끊임없이 증원되는 북한군에 부득이하게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0년 7월 30일 북한군과의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택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6판-3면-27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6-ㅌ-09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