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하(이병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08605
  • 전몰일자 : 19510201

공훈사항

이병하 일병은 경상북도 영양군 일원면 곡강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출했다가 기습적인 ‘중공군의 1차 공세’로 청천강 일대의 개천으로 철수할 때인 1950년 10월 26일에 대구에 설치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2사단 제32연대에 배치되었다.
제2사단은 1950년 11월 7일에 서울에서 재창설 되어 예하 연대로 제17연대와 제31, 제32연대를 편성했다. 사단은 11월 말이 되면서 포천, 홍천, 평강 등 경기도 북부지역으로 출동하여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들을 소탕하는 작전을 수행했다. 당시 북한군 패잔병들은 유엔군의 후방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유엔군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해 진격하던 중 중공군의 2차 공세에 곳곳에서 후방이 차단당하여 38선으로 철수했다. 제2사단은 전선 조정에 의해 국군 제3군단에 배속되어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주공격 방향으로 하여 대규모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했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전반적으로 병력이 부족하여 전방지역에 제대로 협조된 방어진지를 구축하지 못해 곳곳에서 중공군에 돌파를 허용했다. 제2사단도 주저항선이 돌파 되어 방어진지에서 철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병하 일병이 소속된 제2사단은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가평을 거쳐 여주 방향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중공군은 보급 문제 등으로 계속 공격하지 못하고, 유엔군은 평택-원주-제천-삼척을 연하는 선에서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병하 일병이 소속된 제2사단은 여주에서 집결하여 제천을 거쳐 풍기로 이동하여 미 제10군단 예비부대로 부대정비를 하며 충주-단양 간 병참선 경계를 했다. 그가 소속된 제32연대는 단양 일대에서 보급로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가 소속된 중대는 2월 1일에 단양 동북방 영월 일대에서 보급로 경계임무 수행 중에 북한군 패잔병 약 1개 소대 규모의 습격을 받고, 즉각 반격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1판-4면-26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1-ㅈ-07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