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학(李秉鶴)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204222
  • 전몰일자 : 19500711

공훈사항

이병학 이등중사는 1926년 7월 13일에 출생했다(출생 장소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6월 중순, 서울 용산의 제2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동년 8월 13일부터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옹진지구전투사에 배속되어 적의 도발을 억제하고 11월 15일에 복귀했다.
제2연대는 1950년 6월 12일부로 제6사단에 예속되어 홍천으로 이동하였고, 이곳에서 제8연대가 담당하던 홍천 북방의 42km 방어지역을 인수했다. 연대는 통나무로 쌓은 유개호를 제8연대로부터 인수했으나 철조망이나 대인지뢰는 설치되어 있지 않았고, 새로 설치할 시간적 여유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연대는 전쟁 발발 직전에 남침을 예견하는 북한군의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자 장병들의 외출외박을 통제하면서 고도의 경계태세를 유지했다.
제2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지형도 잘 모르고 방어준비도 미흡한 상황에서 북한군 제12사단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치밀한 전쟁 준비를 마친 북한군은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으로 아군 경계진지를 무력화한 후에 SU-76자주포(당시 전차로 오인)를 앞세우고 쳐들어왔다. 이에 이병학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경계지역전투(음양리, 막장골, 어론리), 주저항선 전투(어론리, 자은리, 철정리), 최후저항선전투(철정리, 한계리, 성산리)에서 적 자주포를 파괴하기 위해 57mm 대전차포를 운용하고, 대전차포가 없으면 특공조를 운용했다. 또한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반격하는 등 공세적인 전투로 홍천 북방에서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지연시켰다.
제2연대 장병들은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6월 29일에 홍천에서 철수하여 지연전을 실시하며 횡성-원주를 거쳐 7월 2일에는 충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남한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으나, 7월 7일 야간에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철수하여 문경 일대로 이동했다. 이병학 이등중사이 소속된 연대는 이화령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장병들은 방어준비로 철조망을 설치하던 중, 7월 11일에 아군의 방어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침투한 적 정찰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학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충무무공훈장(훈기번호 3084국)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장병3묘역-314판-3902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8-ㄴ-04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