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학(李丙學)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사
  • 군번 : 1805061
  • 전몰일자 : 19530714

공훈사항

이병학 중사는 1930년 1월 15일 강원도 횡성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1월 18일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으며,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병학 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1951년 2월부터 4월까지 삼척-강릉-속사리-남가리-설악산 일대까지 진격하면서 강릉 지구전투와 오대산 전투를 실시하였다. 이어 양양전투를 수행한 이 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5월 7일부터 13일까지 설악산지구전투와 5월 18일부터 25일까지 대관령 방어 작전 등으로 북한군의 춘계공세를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였다. 이어 5월 말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위하여 진지 공사에 주력하면서 전방지역에 대한 위력수색을 실시하였다. 1952년 7~10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전투에 참여하여 북한군과의 공방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했으며 10월 25일 경기도 양주로 이동해 11월 3일부터 9주간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부대정비와 훈련을 마친 후 사단은 강원도 사창리로 이동하였다.
이병학 중사와 사단 장병들은 1953년 1월~7월 김화 동북지역의 금성전투에 참여하였다. 이 중사와 연대병력은 1953년 5월 14~16일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470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또 그는 5월 23~24 금성 서남쪽 4㎞지점에 있는 회고개 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금성 돌출부(김화저격능성-금성 남쪽 중치령.회고개-교암산-지형능선-수도고지-949고지-973고지-833고지를 연하여 형성)일대의 주저항선을 고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한편 중공군의 최후공세가 1953년 7월 13일 야간에 시작되었다. 그들은 포병사격을 맹렬히 가하면서 사단 방어지역으로 일제히 공격하였다. 연대병력은 13일 자정 경 전방진지가 유린되고 14일 새벽에는 전방대대 관측소가 북한군에게 공격을 받음으로써 주저항선이 붕괴되었다. 이 중사와 연대병력은 이 능선을 점령하여 새 주저항선을 구축하는 한편 미처 철수하지 못한 사단 병력을 구출하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전투를 수행했던 이병학 중사는 1953년 7월 14일 김화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학 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7648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7-ㅋ-07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