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학(이병학)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00495
  • 전몰일자 : 19500917

공훈사항

이병학 중위는 경상남도 울산군 상원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49년 3월 중순에 국가의 간성이 되기 위한 큰 뜻을 품고 동래에 위치한 육군보병학교로 입교하여 6개월간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949년 10월 27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수도사단 제1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기갑연대는 M8장갑차 27대를 장비한 장갑수색대대, 마필 300대가 편성된 기병수색대대, 도보수색대대 등 3개 대대로 편성되어 육군직할 독립부대로 운용되고 있었다. 기갑연대는 1950년 7월 5일 수도사단으로 편입되었다.
6·25전쟁 발발 이후 이병학 중위와 연대병력은 7월 6일 진천지구 전투, 7월 13일 청주 전방 미호천 전투, 14~16일 청주 남쪽 고은리 전투를 수행하고, 7월 17일 보은에 도착하였다. 이어 다시 철수하여 7월 말에는 낙동강 방어선 형성 시 의성 동쪽 길안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이병학 중위의 진두지휘하에 장병들은 8월 12일부터 9월 14일까지 전개된 기계-안강전투에서 북한군 유격부대인 제766부대의 해체된 병력으로 증강된 북한군 제12사단을 격퇴함으로써 북한군의 낙동강 방어선 돌파를 저지하였다. 이 무렵 낙동강방어선에서는 조국의 운명을 건 혈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낙동강방어선전투는 안강 일대에서 유격대로 증강된 북한군 2개 사단의 침공을 격퇴한 방어 전투였다. 방어전투라기보다는 핵심지역을 낮에는 국군이 점령하고 밤에는 북한군이 점령하는 공방전의 연속이었고, 계속되는 공방전에서 피아간 사상자가 크게 발생하였다. 이어 9월 16일부터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집요한 공세를 물리쳤다.
이병학 중위는 장병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중대장이었다. 그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최후의 일전을 각오하고 직접 기관총과 박격포를 발사하며 응전하였으나 끝내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1950년 9월 17일 강동리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학 중위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4718 육)을 추서하고 유해(33묘역-판-128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09-ㅌ-02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