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학(李秉學)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11931
  • 전몰일자 : 19521124

공훈사항

이병학 하사는 1928년 1월 10일에 경상남도 진양군 진성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3월 25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학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4월 하순, 제6사단은 김화 북방의 765고지-교암산을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 사단은 1951년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9일 동안 백암산 전방의 중공군을 대파하고 교암산-송동리까지 진출하여 금성천 분지를 확보하고, 이어 11월 17일과 18일 양일에 진지 전방의 949고지를 탈취하여 전초기지로 운영했다. 이는 공산군으로 하여금 휴전회담에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1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배속해제 되어 사단과 함께 양구 일대에서 야외기동훈련을 하다가 3월 22일부로 미 제9군단에 다시 배속되어 김화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이병학 하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사단의 우측 지역인 765고지-교암산을 주저항선으로 점령하고, 제2대대 장병들은 전진기지인 575고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 고지는 대치하고 있는 적들에겐 눈엣가시처럼 돌출되어 있었다. 중공군들은 575고지를 빼앗기 위해 1952년 4월 16일에 야간에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탈취했다. 아군은 즉각 역습하여 4월 18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뺏고 빼앗기는 혈투를 벌였으나, 끝내 되찾지 못했다.
이병학 하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5월 22일에 제19연대에 전방방어진지를 인계하고, 사단 예비로서 부대정비 및 수색작전 활동에 집중했다. 제7연대는 사단 예비로 활동하다가 10월 15일부로 사단의 전투지경선이 확장되면서 전방방어진지를 점령하게 되었다. 사단 방어지역의 우측으로서 원래 방어하던 교암산을 좌우로 잇는 고지군이었다. 연대 장병들은 새로 인수한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수색 및 매복작전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다. 그러던 중 그가 소속된 중대는 11월 24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학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1543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5-ㄴ-06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