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한(李炳漢)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5400061
  • 전몰일자 : 19500906

공훈사항

이병한 일병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이 낙동강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8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했다. 당시 전황이 워낙 급박했던 관계로 이 일병은 소총 분해결합 정도의 간단한 기초군사훈련만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육군본부는 8월 20일 대구에서 제3·5·8연대와 제5포병대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제7사단을 창설했다. 사단은 군 예비로서 교육훈련을 하면서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8월 하순 북한군 제15사단이 영천 북방의 고모산, 봉화봉, 수석봉 일대의 국군 제8사단 주저항선을 돌파하고 영천 북방의 기룡산 전방까지 진출함에 따라 사단의 상황이 급박하게 되었다.
이에 육군본부에서는 8월 27일 제5연대와 박 일병이 소속된 제3연대 제1대대를 제8사단에 배속했다. 대대는 제8사단 예하의 제16연대에 재배속되어 수석봉과 기룡산, 그리고 그 동쪽의 602고지 일대에서 북한군과 뺏고 뺏기는 혈전을 벌였다.
9월 2일 북한군은 총공세(9월 공세)를 펼쳤다. 이때 대대 전방의 적은 북한군 제15사단이었다. 적 제15사단은 전차 12대와 각종 포 166문의 지원을 받으며 입암과 영천 사이의 도로를 따라 3개 방면에서 집중 공격을 가했다. 대대는 16연대와 함께 사단의 중앙 일선 부대로 기룡산 일대에 배치되었다.
적이 강력한 공격준비사격과 함께 집중 공격을 가하자 사단의 중앙 축선이 무너지면서 인접의 제8사단 제16연대 대대들이 철수했고, 이에 따라 대대는 적의 포위망에 갇히게 되었다. 대대 장병들은 일치단결하여 육박전까지 치르면서 분전한 결과,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가까스로 포위망을 탈출할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해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9월 6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48-ㅎ-00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