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헌(李丙憲)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330

공훈사항

이병헌 순경은 경기도 장단읍 군내면에서 출생했다. (출생일자 및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지전사 소속으로 재직 중 영광에서 전사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이 개시되자 남·북의 전세가 역전되면서 아군은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했다. 이로 인해 북한군은 전선이 단절되자 북한군 제10사단 패잔병 약 3,400명과 남로당 제1지대 유격대 약 1,700명, 제3지대 유격대 약 450명, 이현상의 남부군 약 450명이 지리산 일대로 잠입했다.
이 순경이 경찰 일선(경기 장단경찰서)에 배치될 무렵 장단경찰은 장단경찰서를 수복하고 담당지역 내 치안유지활동을 강화하고 있었다. 이 순경은 치안유지 임무수행을 하다가 이듬해 1·4 후퇴를 하는 동안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와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치안국은 비상경비총사령부 설치 훈령을 근거로 1950년 12월 6일 치안국 전투경찰부대인 태백산지구 전투경찰사령부(태전사)와 지리산지구 전투경찰사령부(지전사)를 창설했다. 지전사는 남원에서 전라남북 일원과 경남 서부지역을 담당하여 해당 지역의 공비를 토벌하기로 하였다. 지전사는 제203부대를 전남 순천·구례·곡성에, 제205부대를 경남 함양·산청지역에 투입하여 지리산 일대의 공비토벌에 임했다.
이 순경은 1951년 1월 중순경 지전사 제203부대에 편입되었으며, 공비토벌을 위해 전남지역에 투입되었다. 전남 영광군의 공비들은 양민 1,400명을 반동분자로 몰아 대량학살을 자행했다. 또한 목포·무안·함평·나주·영광 지구부대 등 무장부대 350명을 비롯하여 부역자 1,000여 명이 합세하여 백수면을 ‘해방지구’로 장악하고 대한민국 정부를 거부하였다.
1951년 1월 20일 전남도경과 지전사 203부대는 백수면에 야간침투 공격을 개시했다. 공비들은 구수산에 은거지를 두고 주변 고지에는 전초를 배치하여 방어하고 있었다. 경찰은 공비들의 저항을 무력화시키며 외곽의 공비들을 그들의 본거지인 구수산으로 몰아넣었으며, 이날 오전 185명을 사살하고 백미 20가마와 소 5마리를 노획했다. 3월 11일에는 구수산의 본거지를 완전히 파괴하는 한편 공비 80명을 사살하고 30명을 생포했으며, 그들에게 끌려가던 양민 1,200명을 구출했다. 3월 30일에는 백수면 대신리에서 소탕작전을 펼쳐 이 순경은 적 2명을 사살하고 계속해서 작전을 수행하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헌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부부위패01판-면-16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3-ㅂ-04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