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혁(李炳赫)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8598
  • 전몰일자 : 19501001

공훈사항

이병혁 일병은 경상남도 밀양군 내일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 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0월 1일 육군에 입대하여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전선 상황은 38도선 북쪽의 20km 지점인 동해안 가도의 양양-간성에 진출하는 등 동해안 도로를 따라 북상 중이었다. 이 무렵 간성 방어를 실패한 북한군은 고성-통천-고저 선에서의 축차 저항을 기도하였고, 일부 병력은 오대산. 설악산 등 산악으로 잠입하여 후방보급로를 차단하며 유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병혁 일병은 전선에 투입되어 연대병력과 10월 5일 원통-양구로 공격하였으며 동해안으로 진격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기동로의 전환은 동해안 도로상에 2개 사단 6개 연대의 부대가 집중되는 취약점을 조금이라도 덜고 태백산맥 동측에서 준동하는 패잔병을 소탕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국군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일병 역시 간단한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과 같이 입대한 신병들이 전투에 투입되어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전사하는 사례도 허다하였다. 군번은 고사하고 부대원 명부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중대장은 물론 소대장이나 분대장이 소속 대원의 이름을 익히기도 전에 전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병혁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전투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했던 이병혁 일병은 1950년 10월 1일 양양 부근 전투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으나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3-ㄹ-07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