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혁(李炳赫)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613760
  • 전몰일자 : 19510719

공훈사항

이병혁 일병(일등중사로 기록되어 있으나, 입대일자로 볼 때 일병임)은 1928년 8월 25일에 경기도 시흥군 남정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마지막 대규모 공세인 5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던 1951년 5월 25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혁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6월 하순, 제6사단은 백암산을 좌우로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에 제6사단은 용문산 일대에 주방어진지를 편성하고, 그 앞 홍천강 선을 연하여 전초진지를 배치하고 있었다. 얼마후 중공군은 5월 16일부터 대규모 공세(일명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시작했고, 제6사단은 전초지역에서 제2연대가 전면방어로 5일간 사수하였다. 이후 중공군이 공격을 중단하자, 제7연대와 제19연대는 즉각 반격으로 전환하여 5월 20일부터 공격했다. 이에 포위 위협을 느꼈던 적들은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후 제6사단은 5월 25일에 가평-춘천 사이의 산악지대인 계관산-북배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했다. 이어서 5월 28일에 저항하는 적을 격퇴하고 구만리발전소(현 화천수력발전소)-병풍산을 잇는 선을 확보하고 부대정비에 들어갔다. 사단은 6월 5일부터는 철의 삼각지대를 포함하는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이병혁 일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사단의 주공으로서 백암산에서 화천으로 뻗어 내린 643고지-887고지-992고지-취봉 방향으로 공격했다. 6월 10일까지 계속된 공격에서 연대 목표인 취봉을 확보하고, 등대리-단거리-수리봉을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에 제6사단은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작전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7월 19일에 작전지역 내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5판-2면-18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4-ㅈ-02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