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호(이병호)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201954
  • 전몰일자 : 19500805

공훈사항

이병호 소위는 충청남도 홍성군 은하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소위는 예비역이었으나, 전쟁이 발발하자 즉각 군에 재입대하여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 발발 당일인 6월 25일 제3연대는 동일 11시부로 동두천, 포천 축선을 방어하고 있던 제7사단에 배속되어 포천 후방의 송우리 전선에 곧바로 투입되었다. 6월 25일 저녁 전력의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 적 T-34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가 없는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적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하고 그날 야간에 창동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연대는 27일 창동선의 154고지 일대에 배치되어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수도 서울을 지키려 했으나, 적 전차를 막지 못해 또다시 돌파될 수밖에 없었다. 연대 장병들은 28일 한강교가 폭파되기 전에 이 다리를 건너 과천으로 철수했다.
이 소위와 연대 장병들은 29일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예하의 혼성 제2사단에 편성되어 역삼리 일대의 한강방어선과 과천 일대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7월 2일 연대는 이 지역을 제3사단에 인계하고, 군포 근처의 348고지에 배치되어 아군 수도경비사령부와 제7사단의 철수를 엄호한 후 수원으로 철수했다. 7월 5일 육군본부는 부대를 재편하여 손실이 심한 제5, 7사단을 해체했고, 이때 연대도 해체되었다.
이후 제7사단본부는 예하에 제3, 9연대를 편성하고, 전북 일대에서 신병모집 임무를 수행하다 7월 20일 민부대(민기식 부대)로 개칭되었다. 7월 중순부터 북한군 제6사단이 호남지역으로 투입됨에 따라 제3연대는 민부대의 일부로서 임실-남원-운봉-함양-하동-진주로 철수하면서 지연전을 펼쳤다.
8월 1일 미 제25사단이 민부대를 배속받아 마산 방면에 투입되었고, 민부대는 함안의 괘방산, 서북산 일대에 배치되어 12일까지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이 전투에서 이 소위는 소대원을 이끌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8월 5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호 소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8판-3면-14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2-ㄲ-04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