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호(李炳護)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06

공훈사항

이병호 순경은 1923년 11월 12일 경기도 수원시 세류동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기도경 수원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안성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에 들어서면서 북한 유격대가 태백산 일대에 계속 침입하자 치안국은 시흥 육군보병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경찰 간부들을 중심으로 4월 20일 제8·제9전투경찰대대를 편성하여 강원도 영월과 춘천지역에 배치하는 등 전·후방의 치안확보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6월 10일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38도선 접경지역인 경기·강원 2개 도에 비상경비태세 강화명령을 내려 북한의 군사동태를 잘 살피도록 하였다.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경기도경은 서울-수원, 수원-용인, 수원-화성 간 주요 보급로 경비와 철도경비, 정보수집 임무를 수행하며 북한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이 순경은 북한군의 남침동향, 전투상황, 오열의 활동상을 파악하여 보고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7월 2일 평택에 집결되어 있던 경기경찰병력이 안양과 수원에 배비되었고, 7월 4일에는 경기경찰 300명이 천안-수원 간 철도경비를 강화했다. 이 시기 전선은 수원-이천-여주-원주를 연하는 선에서 형성되었는데 이날 북한군이 수원을 향해 대대적인 공격을 가하였다. 군경부대는 수원을 사수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으나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인하여 방어선이 무너지고 말았다. 수원경찰은 7월 5일 수원에서 안성으로 후퇴하여 전열을 정비하며 차후작전에 대비했다.
7월 6일 안성 옥산동에서 수원경찰과 적 사이에 교전이 벌어졌다. 이 순경은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호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50판-4면-07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4-ㅈ-07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