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호(李炳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2453
  • 전몰일자 : 19500810

공훈사항

이병호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50년 2월 중순, 서울 용산의 제2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50년 6월 12일에 제6사단에 예속되어 홍천으로 이동하여 제8사단으로부터 홍천 북방의 42km 방어지역을 인수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남침을 감행했을 때, 제2연대 장병들은 어론리 북방의 주저항진지에 투입되어 인제에서 홍천에 이르는 축선에서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지연시켰다. 연대 장병들은 용감히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6월 29일에 홍천에서 철수하여 횡성-원주를 거쳐 7월 2일에는 충주로 이동했다.
이병호 일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7월 5일에 충주에서 남한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7월 12일에 이화령 일대를 점령하고 충주-문경-함창 방면으로 공격하는 북한군 제1사단과 이를 증원하고 있던 북한군 제13사단을 저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7월 16일에 문경에서 철수하여 유곡-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 축선을 따라 지연전을 펼치며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제6사단은 8월 1일에 낙동강방어선 상의 용기동으로 이동했다. 이병호 일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8월 3일에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잇는 고지군을 점령하고, 이곳에서 적 공격을 격퇴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다. 그러던 중 8월 8일에 선돌주막에서 2개 대대 규모의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치열한 교전 끝에 격퇴했고, 그는 8월 10에 전투에서도 계속되는 적의 공격을 맞아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2판-5면-01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9-ㅅ-00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