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호(李炳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08303
  • 전몰일자 : 19511102

공훈사항

이병호 일병은 제주도 남군 안덕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실시한 후 제11사단 제20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호 일병이 전입했던 10월 중순, 제11사단은 호남지역에서 공비소탕작전을 하고 있었다. 이후 제20연대는 광주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지리산 서남쪽 지역에서 공비 토벌작전을 실시했고, 1951년으로 접어들면서 회문산과 백아산 일대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사단은 대대적인 공비소탕작전으로 세력으로서의 공비 활동을 완전히 소멸시켰다.
제11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 4월 공세 시에 속초-간성 일대에서 철수하여 양양 북방의 대포리 일대에서 저지했다. 사단은 5월 7일에 마등령-저항령-989고지 방향으로 반격하여 속초 일대까지 진격했으나, 5월 16일에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를 맞아 다시 철수하여 대관령-강릉 선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제11사단은 5월 22일부터 강릉-양양-간성(향로봉 및 건봉산) 방향으로 반격하여 6월 10일에 거진-건봉령-향로봉 선을 확보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큰 전투는 없어졌고,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작전 활동에 집중했다. 이후 공산군이 휴전협상 기간을 활용하여 현상보다 전력보강에 집중하자, 유엔군사령부에서는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적을 압박하기로 했다.
제11사단은 유엔사의 작전지침에 의거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향로봉 북쪽의 884고지를 탈취하기로 하고, 8월 18일부터 먼저 제9연대가 공격했다. 제9연대는 8월 25일까지 공격에서 두 차례 탈취했으나 적의 역습으로 다시 빼앗겼다. 이에 이병호 일병이 소속된 제20연대가 8월 27일부터 공격하여 29일에 치열한 전투 끝에 884고지를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이 884고지는 전초기지로 운용하면서 진지보강과 수색정찰에 집중했다. 그가 소속된 중대는 11월 2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73-ㄷ-06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