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호(李炳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83202
  • 전몰일자 : 19510515

공훈사항

이병호 일병은 1926년 8월 16일 경기도 연백군 촌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하면서 조국이 또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1년 1월 1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1·4 후퇴를 단행하여 37도선 일대로 철수하여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중공군 제3차 공세에 밀려 영월 동북방의 봉래산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제3군단은 제7사단으로 하여금 영월을 탈환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연대는 1월 19일 공격을 개시하여 만경대산, 785고지, 583고지, 계족산을 차례로 점령하고, 적의 퇴로를 차단했다. 24일 연대는 총공격을 개시하여 영월을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적이 물러남에 따라 1월 25일 사단은 공세로 전환하여 평창 북방으로 진출했고, 2월 초순까지 횡성 동북방의 창동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북한군 제2군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평창 일대를 내주고 후방으로 후퇴했다. 적은 계속해서 영월을 점령하려고 기도했으나, 연대는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 때, 연대는 평창-창동리 도로를 따라 공격하여 강원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유엔군의 리퍼작전(3. 7.~3. 31.) 때 연대가 소속된 제3군단은 조공으로 공격을 했고, 연대는 3월 6일 하진부리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연대는 백석산과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이후 연대는 지역 내 잔적을 소탕하면서 속사리-창촌-현리 방향으로 계속 진격하여 3월 하순에는 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초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연대는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의 신풍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끝까지 진지를 지키며 용감하게 싸우다 싸우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5월 15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06묘역-7판-329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2-ㅊ-04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