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환(李秉煥)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9286073
  • 전몰일자 : 19521204

공훈사항

이병환 상병은 1927년 10월 22일에 강원도(現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동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교환문제 등으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1월 9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환 상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한편 중공군의 1951년 5월 공세 이후 공산군 측과 유엔군 측은 군사작전으로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7월 10일 최초로 휴전회담이 열렸으며, 이에 양측은 대규모작전을 자제했고 전쟁은 고지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양상으로 변모되는 상황이었다.
제1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1952년 1월 23일부터 동해안 거진에서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여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제9사단으로서 적은 강원도 고성 남쪽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에 따라 제36연대는 좌측 전방, 제35연대는 우측 전방에 배치되었고 제27연대는 예비로 수동리 일대에 집결 보유했다. 당시에 사단 전초진지는 예비연대에서 투입해서 작전을 실시했다. 이병환 상병이 소속된 제36연대는 진지를 더욱 강화하면서 적정 탐색 및 적 침투 방지를 위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지속했다. 전선은 7월 초순까지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마침내 적 제9사단이 7월 10일 야간 10시에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전초진지인 351고지를 집중 공격하여 아군 진지가 피탈되었다. 사단은 즉각 역습으로 주방어선을 지켜냈으며, 11월 초순까지 수시로 소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여 이 고지를 지속적으로 공격했으나 351고지를 사수했다.
사단은 11월 10일부로 현 전선을 제15사단에 인계하고 간성으로 이동하여 다음해 4월 중순까지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하면서 주변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작전을 병행했다. 이병환 상병은 12월 4일 간성 지역에서 수색정찰 중 적과 조우하여 교전하다가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전사자 명부에 전사 장소 30연대는 오기임)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환 상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8판-3면-09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0-ㅍ-045)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