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환(李丙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1900070
  • 전몰일자 : 19500916

공훈사항

이병환 일등중사는 충청남도 대전시 성남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7년 5월경 제9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제3연대로 전속되었다. 연대는 1950년 1월 25일 제2사단에서 제7사단으로 예속 전환되었다가 동년 6월 15일부로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3연대는 포천 후방의 송우리와 창동방어선, 한강방어선의 역삼리, 과천, 군포 일대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으나, 전투력 손실이 심해 7월 5일 해체되었다. 7월 16일부터 연대는 민부대(민기식 부대)의 일부로서 임실-남원-운봉-함양-하동-진주로 철수하면서 지연전을 펼쳤다. 이후 연대는 미 제25사단에 배속되어 함안의 괘방산, 서북산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낙동강방어선을 지켜냈고, 포항이 위험에 빠지자 이곳에 투입되어 적을 몰아냈다.
연대는 8월 20일 대구에서 제5·8연대와 함께 제7사단 예하부대로 재창설되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12사단이 기계, 안강을 돌파하여 경주를 위협함에 따라 이 지역 방어를 맡고 있던 수도사단이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제7사단 제3연대(9월 3일)와 기갑연대(9월 4일)를 수도사단에 배속했다.
연대는 9월 3일 열차 편으로 긴급히 이동하여 안강읍 사방동 일대에 집결했고, 이 일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그 서측의 무릉산 일대에 곧바로 배치되었다. 9월 2일 북한군 제12사단은 총공격을 개시해 안강을 점령하고 경주를 목표로 남진했다. 이때 좌측의 제8사단이 영천을 탈취당할 위기에 처했고, 우측의 제3사단도 포항을 빼앗김에 따라 이 지역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견부인 무릉산과 곤재봉 일대를 사수하느냐가 작전의 성패에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적은 9월 6일 연대가 배치된 무릉산 일대로 후방침투와 정면공격을 병행하여 기습적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연대 장병들은 사방동으로 분산 철수했으나, 기갑연대가 역습을 실시하여 다시 진지를 탈환했다. 이후 연대 장병들은 수류탄전과 백병전을 거듭하는 치열한 전투 끝에 진지를 지켜내고 13일 결국 적을 격퇴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의 마지막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끝까지 진지를 지키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9월 16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환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49-ㅈ-03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