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환(이병환)

  • 군별 : 육군
  • 계급 : 특무상사
  • 군번 : 1201191
  • 전몰일자 : 19501106

공훈사항

이병환 특등상사는 충청남도 천안군 천안면 구충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조국은 1945년 광복에도 불구하고 분단되어 있었고, 사회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이에 그는 조국의 안보 확립에 기여 하고자 1947년 6월 24일에 충남 대전의 제2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제2연대는 1948년 12월 28일부터 이듬해 5월 17일까지 제주도 4·3사건 진압작전에 투입되었고, 그리고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1949년 8월 13일부터 11월 15일까지 은파산전투에 참가하여 북한군의 도발을 격퇴한 후 서울 용산으로 원복했다. 이후 연대는 1950년 6월 12일부로 제6사단에 예속되어 홍천으로 이동하여 제8연대로부터 홍천 북방의 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제2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에 용감히 맞서 3일간이나 저지하여 질서 있는 철수를 가능하게 했다. 연대는 7월 한 달 동안 원주-충주-문경-함창 축선에서 지연전을 수행하고, 이후 9월 중순까지 낙동강방어선의 의성∼우보∼신녕 축선에서 공세적인 방어로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했다. 유엔사는 인천상륙작전에 호응하여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제히 반격하도록 전 부대에 명령했다.
이에 이병환 특등상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9월 16일 8시에 공격을 개시했다.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된 줄도 모르고 조림산 일대에서 9월 22일까지 완강히 저항하다가 철수했다. 이에 사단 장병들은 9월 23일부터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하기 시작하여, 함창-충주-원주를 거쳐 춘천으로 진격하여 10월 5일에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계속 화천-김화-양덕 방향으로 추격하여 10월 19일에 성천(평양 동북방 45km)을 점령했으며, 이어 개천-희천 방향으로 진격했다. 사단은 10월 25일에 온정리에서 압록강변의 벽동을 목표로 진격하던 중 동림산(1165m) 기슭에서 매복 중이던 중공군 제40군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아 후방이 차단되었다. 당시 사단은 큰 피해를 받고 산악지형을 따라 소부대 단위로 분산 철수하여 10월 30일 개천으로 집결했다.
제6사단은 개천에서 국군 제2군단의 예비로 부대정비와 집결지 주변에 대한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11월 6일에 소대원을 인솔하여 수색작전을 실시하던 중 중공군 정찰대를 발견하고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환 특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8판-3면–09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6-ㅌ-00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