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훈(李炳勳)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8808854
  • 전몰일자 : 19530720

공훈사항

이병훈 이등중사는 1929년 1월 9일에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3월 18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강원도 양양의 제11사단 제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훈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4월 중순, 제11사단은 건봉령-건봉산-향로봉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 제11사단은 1952년 1월에 건봉산 작전지역을 제5사단에게 인계하고 양양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에 전념했다. 그리고 동년 3월 30일에 국군 제1군단에 재배속되어 다시 건봉령-건봉산 일대의 방어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전투행위가 없어지자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작전 활동에 집중했다. 이러한 활동은 1953년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러던 중 6월 10일에 건봉산-향로봉 일대의 방어진지를 제21사단에 인계하고, 화천 일대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그런데 휴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7월 13일 야간에 중공군이 중동부전선의 금성돌출부를 탈취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이병훈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9연대는 7월 13일에 제6사단에 배속되어 금성돌출부를 형성하고 있는 교암산전투에 참가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중공군의 측방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7월 14일 새벽 2시부터 하고개-월봉산(482고지)에 배치되어 서측방 방어를 강화했다. 그리고 7월 15일에는 적근산-삼현지구에 대한 공격 임무를 부여받고, 7월 16일부터 공격을 개시하여 7월 18일에 602고지와 금성천 만곡부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함으로써 백암산 정면으로 침입한 중공군의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7월 20일에 즉각적인 역습으로 602고지는 다시 탈취했고, 이날 전투에서 그는 분대장으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훈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46673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장병1묘역-125판-1142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4-ㄹ-04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