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훈(이병훈)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7100714
  • 전몰일자 : 19510521

공훈사항

이병훈 이등중사는 1928년 7월 10일에 경기도 양주군(現 양주시)에서 출생했다(세부 출생 장소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전 38도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잦았던 시기인 1950년 3월 20일 입대하여, 서울 용산에 위치한 헌병학교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同 학교 조교요원으로 배치되었다. 이병훈 이등중사는 야전헌병 양성을 위해 전념을 다해 교육훈련을 실시했다.
이병훈 이등중사가 헌병학교 조교로 복무 중 6·25전쟁 발발로 헌병학교 장병들은 즉각 전방지역으로 투입될 준비를 했고, 육본 명령에 의거 포천-의정부 축선으로 투입되어 제7사단 헌병대로 편성되었다. 당시 헌병의 임무는 후방지역에서의 질서유지와 피난민 속에 침투하는 적 오열을 색출하는 것이었다.
국군은 수도 서울을 북한군에게 내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한 후 1950년 6월 28일부터 한강선 방어 작전을 전개했다. 그 후 국군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지연작전을 실시하여 7월부터 낙동강선 방어 작전에 돌입했다.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성공적으로 저지한 국군과 유엔군은 북진작전에 돌입함으로써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을 계속해 한・만 국경에 도달했다.
그러나 10월 24일과 11월 24일에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 후 국군과 유엔군은 12월 중순까지 38도선 일대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차후에 있을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이병훈 이등중사는 헌병요원들과 함께 후퇴하는 병력 수습과 교통통제, 낙오자 통제 등의 임무를 완수 후 12월 중순경 부산에 위치한 헌병교육대로 복귀했다.
당시 부산 지역은 미군의 지원물자가 대부분 부산항을 통해서 들어오고 있었고, 부산에는 각종 지원부대와 시설 등이 밀집되어 있었다. 이에 북한군 유격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활동이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북으로 진격하는 시기에도 그치질 않았고, 중공군이 참전하자 더욱 심해졌다.
헌병교육대는 헌병요원의 교육훈련에 전념하면서 조교를 포함한 기간요원으로 자체방어도 수행했다. 이병훈 이등중사는 부대원들과 함께 1951년 5월 21일 야간 헌병교육대 인근에 게릴라가 출몰하여 이들 소탕 작전에 투입되어 색출된 게릴라와 교전하던 중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훈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7면-358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6-ㅂ-04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