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훈(李丙勳)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6747
  • 전몰일자 : 19510406

공훈사항

이병훈 일병은 경기도 김포군 대곶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4월 1일 육군에 입대하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일병 역시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채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훈 일병은 임진강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병력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임진강과 화천저수지를 끼고 있어 방어에 유리한 선)에서 철의 삼각지대로 공격을 개시할 무렵 화천저수지-남전리-한계령을 연하는 캔자스선에 도착하여 전선을 정비하고 있었다. 사단 장병들은 4월 공세의 조공을 맞아 작전지역이 산악지대로 기동공간이 제한되어 우세한 기동력과 화력을 활용하지 못하여 적의 야간 기습공격에 다소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이병훈 일병과 같이 입대한 신병들이 전투에 투입되어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전사하는 사례도 허다하였다. 군번은 고사하고 부대원 명부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중대장은 물론 소대장이나 분대장이 소속 대원의 이름을 익히기도 전에 전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는 전투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임하였다.
이 일병은 야간 기습공격 중 북한군을 물리치기 위해 돌진하던 중 바로 눈앞에 북한군의 진지를 앞두고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지 못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분전하며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병훈 일병은 1951년 4월 6일 남전리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이 쏜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훈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0판-3면-07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4-ㅇ-07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