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훈(이병훈)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167188
  • 전몰일자 : 19521014

공훈사항

이병훈 일등중사는 1925년 1월 1일에 전라북도 김제군(現 김제시) 봉남면 신응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북진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후퇴할 당시, 1950년 12월 8일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同 훈련소 조교요원으로 배치되었다. 이병훈 일등중사가 훈련소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으로 철수하여 방어 편성에 전념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1훈련소는 신병교육에 주력하면서 인근에 출몰한 적들의 유격활동에 대응하고 있었다.
한편,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병력 확보와 각 지역 방위 임무를 동시에 해결할 목적으로 1950년 7월 초순 각 도별로 편성관구사령부를 설치하고 신병 확보와 더불어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그리고 신병교육을 위해 8월 14일 대구에서 육군본부 직할로 제1훈련소가, 부산에는 제2훈련소가 창설되었고, 8월 22일에 경남 구포에 제3훈련소가, 제주도 모슬포에 제5훈련소가 창설되면서 신병을 양성했다.
그런데 이병훈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훈련소는 1951년 1월 22일에 제주도 모슬포로 이전하여 원래 이곳에 있던 제5훈련소와 통합하면서 3월 14일부로 명칭이 제1훈련소로 통일되었다. 제주도는 제주 4·3사건(1948년 4월 3일 발생) 때 군・경의 토벌작전에서 살아남거나 한라산으로 도피한 적 게릴라 잔당들이 수시로 출몰하여 지서나 관공서 등을 습격, 파괴했다. 이들의 유격활동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38도, 37도선까지 남하하자 더욱 극심해졌다. 그리고 때로는 우익 인사에 대해 테러를 하거나 민간인을 납치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당시 상황이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게릴라들이 출몰할 때마다 제주도 주둔 해병대사령부나 제1훈련소 병력이 출동해서 이들을 소탕해 왔다. 제1훈련소는 신병훈련에 주력하면서 조교를 포함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게릴라 소탕 작전을 했고, 이병훈 일등중사는 신병교육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서도 기동타격대로 소탕 작전에 앞장서 왔다. 1952년 10월 14일 서귀포에 적이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 작전에 투입되어 격멸했다. 이 전투에서 이병훈 일등중사는 탐색조장으로서 조원들을 통제하며 게릴라를 탐색 중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훈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4면-127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7-ㅂ-004)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