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훈(李秉勳)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522646
  • 전몰일자 : 19530714

공훈사항

이병훈 하사는 1926년 1월 3일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3년 2월 23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후의 전황은,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유엔군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1952년 4월 5일부로 재창설된 제2군단에 배속되어 양구군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739고지~949고지~석장리 간의 전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연대는 큰 전투 없이 주저항선과 전초진지에 대한 진지를 보강하면서 수색정찰과 매복작전, 적진에 대한 전투정찰 등을 지속 실시했다.
중공군은 국군의 금성 돌출부에 대한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시작하기 전 서전으로, 1953년 4월 2일 사단 주저항선인 949고지, 973고지의 전초가 설치된 689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연대 장병들은 중공군 제181사단의 공격을 맞아 12일까지 8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을 거듭한 끝에 이 고지를 지켜냈다. 4월 20일 제5사단에 전선을 인계한 사단은 미 제8군 예비로 전환되어 화천의 사방거리 일대에서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했다.
사단은 6월 15일 제2군단에 다시 배속되어 화천군 백암산 전방 북한강과 금성천 분기점 상의 529고지(관망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중공군 제180·제201사단은 6월 25일 공격을 개시했고(6월 공세), 사단은 7월 3일까지 7차에 걸쳐 역습을 감행하며 격렬한 공방전을 치렀으나, 끝내 이 고지를 적에게 내주고 말았다.
7월 13일 중공군은 금성 돌출부에 대해 마지막 총공세(7·13 공세)를 가했다. 금성천 북방의 여문리 일대에 배치된 사단은 중공군 제60군 예하 3개 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분전했으나, 압도적인 전력에 밀려 흑운토령-주파령-산양리까지 지연전을 펼치면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며 용감하게 싸우다 7월 14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훈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9판-5면-03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9-ㅂ-08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