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훈(이병훈)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36665
  • 전몰일자 : 19510221

공훈사항

이병훈 하사는 출생일자와 출생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하사는 1950년 10월경에 입대 후 제9사단에 배치되었다.
아군이 북으로 진격함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적의 잔류 병력은 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동시에 예기치 않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후방지역작전을 하던 미 제9군단과 예하 미 제2·제25사단은 청천강 선으로 투입되었다.
따라서 10월 15일 창설된 국군 제3군단이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 제9사단은 1950년 11월 15일에 전북 금산군 남이면에서 1개 대대 규모의 공비를 소탕했고, 동년 11월 20일에는 상용리에서 적 200여 명을 포획 섬멸했다.
그리고 11월 23일에는 대둔산 대평리, 삼왕리를 포위 공격하여 산속 깊숙이 은거하고 있던 적을 소탕하고 적의 근거지를 제거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북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와 경북 서부지역 공비소탕 작전에 투입되었고,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를 담당하였다.
12월 19일부로 제9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그 후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하였다. 이후 사단은 북한군 유격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당시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원대리-서림을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그 후 상급 부대명에 의거하여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한 뒤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연대는 창리 일대에서 중공군 2월 공세를 맞아 대략 1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격퇴했다. 이 하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앞장서서 적과 싸우다 적탄에 맞아 후송되었으나, 1951년 2월 21일에 끝내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훈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0-ㅅ-8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