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희(李炳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746463
  • 전몰일자 : 19530612

공훈사항

이병희 이등중사는 1933년 4월 3일에 전라북도 익산군(現 익산시) 용안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9월 15일 양구에 위치한 제5사단에 현지 입대하여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희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1951년 8월 말부터 10월 14일까지 40여 일간 양구 지역 가칠봉 전투를 치르면서 혈전을 벌인 전선을 10월 20일부로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양양으로 이동, 1952년 1월 23일부터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전선방어에 투입되었다. 사단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9사단으로 적은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적 제9사단은 7월 10일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했다. 적의 기습공격에 아군은 적에게 동 고지를 탈취당했으나, 제27, 35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3일간 적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이 고지를 탈환했다. 그 후 사단은 11월 10일 현 전선을 제15사단에 인계하고 간성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하면서 주변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작전을 병행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제5사단은 4월 15일부로 제2군단에 배속되어 김화지역의 제3사단 전선을 인수받아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하게 되었다. 제36연대는 좌측 전방 949고지 일대를, 이병희 이등중사의 제27연대는 우측 전방 883고지 일대를 방어하도록 하고, 제35연대는 사단예비로 낡은터와 황병동에 보유하면서 주진지 및 전초진지 보강을 실시했다. 이후 사단 전방의 중공군 제60군 제180사단이 5월 12일 사단의 전초기지인 689고지(텍사스고지)를 공격해 옴으로써, 사단은 5월 17일까지 4차례의 역습을 실시한 끝에 적을 격퇴했다.
마침내 중공군은 6월 10일 제60군 제180・181・203사단을 투입하여 인해전술을 펼치며 파상적인을 공격을 가해 왔다. 사단은 제3사단 제22연대를 배속 받아 6월 15일까지 혈전을 거듭했으나, 적에게 주저항선을 빼앗기고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병희 이등중사는 중공군의 6월 공세 시 소대원을 통제하면서 제27연대의 방어진지에서 교전 중 6월 12일 적 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희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5-ㄷ-09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