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희(李炳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2901458
  • 전몰일자 : 19500825

공훈사항

이병희 이병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1월경 제3여단 제18연대에 입대했다. 동 연대는 1949년 8월 10일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이 이병은 제18연대 장병들과 함께 1949년 9월부터 1950년 1월까지 옹진지구전투사령부에 파견되어 옹진반도의 38도선 상에 위치한 은파산 일대에서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 이병이 소속된 제18연대(-)는 동일 오후 5시부로 동두천 축선을 방어하고 있던 제7사단에 배속되었다. 연대는 덕정 서북쪽의 용암리 일대에서 이 지역에 투입된 북한군 제4사단과 제203전차연대 제3대대와 일전을 벌였다. 그러나 포천 축선에 투입된 적에 의해 의정부가 함락되어 퇴로가 차단됨으로써 연대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연대는 고양을 거쳐 28일 밤 행주나루터에서 한강을 도하하여 김포로 철수했다. 연대는 6월 29부터 7월 3일까지 김포지구전투사령부에 소속되어 김포비행장-오류동-영등포 일대에서 혈전을 벌이면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이어 연대는 7월 3~4일 안양 저지선의 덕안리 부근 전투에서 격전을 치렀다.
7월 5일 제18연대는 제1, 제8연대와 함께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연대는 7월 10일 진천전투, 12~13일 청주 북방의 미호천전투, 그리고 14일~16일 남일면 성무봉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7월 23일부터 연대는 영주, 길안-청송 방어선에서 북한군 제12사단과 격전을 치르면서 적들의 남진을 8월 6일까지 지연했다.
그런데 북한군 제12사단이 국군이 배치되어 있지 않은 산악지대를 통과해 8월 10일에는 영일군 기계까지 침투함으로써 제1군단의 방어선에 큰 돌파구가 형성되었다. 이에 제1군단은 8월 10일 제8사단에 제18연대를 일시적으로 배속했고, 연대는 사단의 역습에 가담하여 8월 14일 적의 후방을 차단하고 뒤에서 공격을 가하여 18일 기계를 탈환하고 적을 패퇴시켰다.
연대는 기계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8월 24일 북한군 제12사단은 기습적인 야간공격을 감행했고, 장병들은 격전을 치르며 적의 공격을 저지하려 했으나, 전투력의 열세로 27일 결국 기계를 내주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이 이병은 끝까지 진지를 지키며 용감히 싸우다 8월 25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희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유해(44묘역-4판-1278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4-ㄴ-02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