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희(李丙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862
  • 전몰일자 : 19501108

공훈사항

이병희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태평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6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이병희 일병이 수색대로 전입했던 9월 중순, 제6사단은 신령 북방의 방어진지에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격퇴하고, 유엔군의 반격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후 제6사단은 9월 16일에 조림산 일대에서 강력히 저항하는 북한군을 격멸하고, 9월 23일부터 도망가는 북한군에 대해 추격에 들어갔다. 사단은 9월 30일에 원주를 탈환하고, 10월 5일에는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선을 돌파했다. 계속 화천을 거쳐 김화–신고산–성천 방향으로 진격하여 10월 17일에는 양덕을, 19일에는 성천-순천을, 23일에는 희천을 점령했다. 이곳에서 유엔군은 10월 24일에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실시했다. 이병희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반격 및 북진작전 간에 선두에서 적정을 파악하여 사단에 보고하고 소규모의 적(敵)은 현장에서 격멸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제6사단은 10월 24일에 희천에서 압록강 변의 벽동과 초산 방향으로 진격했다. 장병들은 통일을 눈앞에 둔 벅찬 가슴을 억누르며 계속 진격하여 10월 26일에 제7연대는 초산을 점령하였고, 오후에는 바로 국경선 경비 임무에 돌입했다. 이때 중공군은 10월 19일에 은밀히 압록강을 건너 적유령 산맥 일대에 은거하다가 10월 26일에 압록강을 향해 돌진하던 국군과 유엔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이에 사단 장병들은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 포위망을 돌파하며 험준한 산길을 통해 후방으로 철수를 감행했다.
이병희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압록강을 향해 진격할 때는 적정 수집과 측방경계 임무를 수행하며 공격을 선도했으나, 중공군에게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는 포위망 돌파가 급선무였다. 수색소대는 겹겹이 싸인 포위망을 돌파하면서 중공군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받으며 11월 1일에 개천으로 집결했다. 제6사단은 철수할 때 전투손실이 막대하여 개천에 도착해서는 재편성 및 부대정비에 집중하면서 적들의 침투 교란에 대비해 수색작전 활동을 강화했다. 그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11월 8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중공군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1판-7면-13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2-ㄷ-01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