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희(李炳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7904326
  • 전몰일자 : 19501024

공훈사항

이병희 일병의 출생 일자 및 출생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7월경 입대 후 제8사단 10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제8사단 각 연대를 방어전으로 배치했으나 적의 병력과 화력이 우세해 강릉을 상실하고 낙동강 지역까지 지연전을 펼쳤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19일 용마산 방면으로 끊임없이 침투하였고, 제8사단 제10연대 장병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수색대를 파견하여 북한군의 역습을 격퇴했다.
경상북도 영천군 보현산 부근의 전투는 피아간에 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20일 기계, 안강 일대, 영천 북방에서 강력한 공격을 실시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입암-영천 부근 도로를 봉쇄했지만, 북한군의 대규모 병력이 공격하여 방어진지가 돌파되었다. 제8사단 10연대 장병들은 1950년 9월 8일 사령부를 금호로 이동시키고 영노동, 작산동 선에 위치한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며 영천군을 재탈환하였다.
국군은 1950년 9월 16일부터 반격작전을 시작했다. 북한군은 국군의 군사력에 구산동 전투에서 참패를 거듭하였다. 제8사단은 포위, 압박하며 공격하였다. 북한군은 1950년 9월 24일에 240고지에서 전초진지를 구축하여 강렬한 저항을 하였지만, 국군의 군사력에 대응하지 못하고 의성 시내, 영주와 풍기 서북방의 15km 지점 939고지에서 패주하였다.
북한군은 제8사단 10연대의 돌격으로 제천, 원주-횡성으로 패주하고 일부 병력은 양평 부근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제8사단 10연대는 북한군을 완전히 섬멸하고자 충북지구에서 6일 만에 양평지구에 도달하고 1950년 10월 3일에 서울에 진출하며 동두천에서 부대 재정비를 하고 마침내 10월 8일 연천 남방에 도달했다.
국군은 연천군에 집결한 북한군을 상대로 공격을 개시했고 북한군은 10월 9일 임진강을 도하하여 패주하였다. 제8사단 10연대는 황해도 곡산 방면으로 진격하였다. 하지만 이 일병은 북한군을 향해 진격하는 도중 안타깝게도 1950년 10월 24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희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44묘역-1판-1351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9-ㅁ-02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