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희(李炳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711863
  • 전몰일자 : 19500806

공훈사항

이병희 일병은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전 38도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잦았던 1950년 5월 중순경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경기도 시흥에 있는 보병학교 교도대로 배치되어 조교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육군본부는 직할의 모든 재경부대를 동원해 방어력을 증강시키려 했다. 이에 보병학교와 육군사관학교 교도대로 서울특별연대를 편성하여 제1사단에 배속하도록 명령하였고, 이에 따라 보병학교 학생연대장 유해준 중령은 용산 국민학교에서 혼성연대를 편성했다. 서울특별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저녁 무렵 문산에 있는 제1사단에 도착했다. 사단은 육군사관학교 교도대를 우전방 제13연대에 배속하고, 이병희 일병이 소속된 보병학교 교도대를 좌전방 제11연대에 배속했다.
보병학교 교도대는 제11연대장 최경록 대령의 명령에 따라 교도대장 김병화 소령이 제1, 2중대를 직접 지휘하여 문산으로 이동하고, 제3중대와 중화기중대는 교도대 부대장 지휘 하에 문산포 서측방의 굴촌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문산 돌출부의 제1대대 진지가 무너지자 연대장은 임진강을 연한 전 방어선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판단하고 역습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제3대대가 역습을 위해 6월 26일 오후 1시경 64고지와 운천리 간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으나, 좌측방에 적이 출현함으로써 진출이 막히게 되었다.
이때 이병희 일병은 육본 교도연대에 편성되어 창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국군은 의정부-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전투력의 열세로 수도 서울을 적에게 내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한강선 방어 작전을 전개했다.
국군은 7월 한 달 동안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축차적으로 지연전을 실시하다가, 8월 1일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여 최후의 결전을 시도했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병희 일병은 북한군의 공세로 인한 낙동강방어선 전투에 참가하여 대구 북방 22km에 위치한 다부동 전투에서 방어임무를 수행하다가 1950년 8월 6일 적 포탄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9판-8면-09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0-ㅌ-098)에 그의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