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희(李炳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22631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이병희 하사는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2년 6월 29일 육군에 입대하여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희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1952년 7월~10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전투에 참여하여 북한군과의 공방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했으며 10월 25일 경기도 양주로 이동해 11월 3일부터 9주간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부대정비와 훈련을 마친 후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강원도 사창리로 이동해 1953년 1월~7월 김화 동북지역의 금성전투에 참여하였다. 북한군은 5월 13일부터 금성돌출부 정면의 전초진지에 대해 공격을 공격을 가해 왔고, 이 하사와 장병들은 많은 희생을 감수하여 대부분의 공격을 격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초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1953년 5월 14~16일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470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이어 5월 23일~24일 금성 서남쪽 4㎞지점에 있는 회고개 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금성 돌출부(김화저격능성-금성 남쪽 중치령.회고개-교암산-지형능선-수도고지-949고지-973고지-833고지를 연하여 형성)일대의 주저항선을 고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한편 중공군의 최후 공세가 1953년 7월 13일 야간에 시작되었다. 연대는 13일 자정경 전방 진지가 유린 되고 14일 새벽에는 전방대대 관측소가 북한군에게 공격을 받음으로써 주저항선이 붕괴되었다. 이 하사와 연대는 이 능선을 점령하여 새 주저항선을 구축하는 한편 미처 철수하지 못한 사단 병력을 구출하였다.
이병희 하사와 연대병력은 만 2일간(7월 13일-7월 14일)의 전투에서 금성돌출부 좌견부 주저항선을 돌파당하고 117A본 도로 남쪽 능선에 저지선을 형성한 미 제3사단에 방어임무를 인계한 후 군단예비로 전환하여 부대의 재편성에 들어갔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임했다. 언제나 최선봉에서 용맹을 발휘했던 이병희 하사는 1953년 7월 16일 김화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희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8판-6면-22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5-ㄱ-02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