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희(李炳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21261
  • 전몰일자 : 19520717

공훈사항

이병희 하사는 1932년 8월 9일에 전라북도 김제군(現 김제시) 봉남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7월 중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희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1951년 7월 10일부터 시작된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8월에 접어들면서 美 제10군단은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북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제5사단은 9월 4일 제27연대를 주력으로 사단목표인 양구 지역 가칠봉 동북쪽 능선과 서희령(西希嶺)을 점령했다. 다음날부터 9월 22일까지 전 작전지역을 감제 가능한 1,211고지를 목표로 제27, 35연대가 교대로 공격을 펼쳤으나 실패하자 사단 예비인 제36연대를 투입하기 위하여 부대 재배치를 단행했다.
10월 1일에 제36연대가 1,211고지를 탈취하였으나 적의 강력한 역습으로 1,211고지의 아군 방어진이 포위되자 사단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병희 하사가 소속된 제27연대가 10월 8일 제35연대 제2대대의 엄호하에 공격을 개시했으나, 다음날 적의 역습으로 또다시 가칠봉으로 철수했다.
그 후 사단은 10월 14일 가칠봉 부근 전투를 종결하고 10월 20일에 이 전선을 국군 제3사단에 인계 후 양양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1952년 1월 13일부로 제1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23일부터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고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9사단으로서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침내 적 제9사단은 7월 10일 대규모의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351고지를 집중 공격했다. 적의 기습공격에 사단은 同 고지를 탈취당했으나, 제27, 35연대를 번갈아 투입하며 3일간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고지를 탈환했다. 이후 적은 11월까지 수시로 소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여 이 고지를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이병희 하사는 분대원을 진두지휘하며 351고지에서 방어 중 7월 17일 적 포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희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4-ㅈ-07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