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균(李輔均)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53703
  • 전몰일자 : 19530717

공훈사항

이보균 이등중사는 전라북도 금산군 남이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0월 21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1952년 초반까지 쌍방 간에 합의되었던 임시휴전선이 백지화됨에 따라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보균 이등중사는 호남지구의 공비토벌 작전에 투입되었다. 사단은 후방지역 공비들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여 후방치안의 확보가 점차 어려워지자 이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1952년 2월부터 백아산, 모후산, 조계산 지구에 대한 소탕 작전과 반복 수색을 전개하였다.
호남지역 공비토벌 작전을 마친 이보균 이등중사와 장병들은 7월 8일 지형능선을 공격해 점령했으나 북한군의 역습을 받아 물러났다. 전선은 7월과 8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서 각각 한 차례씩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9월 6일 북한군은 맹렬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고지 좌우측 계곡으로 공격해 왔다. 이에 장병들은 최후까지 분전했음에도 수도고지를 함락당하였으나 공군의 근접지원과 포병의 지원 아래 공격을 개시하였고 재차 고지를 향해 돌진해 고지를 점령하였다.
1953년 초, 휴전회담이 여전히 중단된 상황에서 전선은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보균 이등중사와 사단 병력은 1953년 5월 14일~16일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470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이후 휴전이 임박했던 7월, 금성지역 북방의 중공군은 6·25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정치적 목적과 중부 전선에 돌출되어있는 한국군 전선으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할 목적으로, 중공군 4개 군 산하 12개 사단의 병력을 동원하여 이보균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이 방어하고 있던 금성지역의 돌출부에 대한 공세를 감행하였다.
이 이등중사는 수도고지-지형능선전투 등 김화 및 금성 지구의 고지 쟁탈전에서 모범을 보이며 앞장서서 솔선수범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보균 이등중사는 1953년 7월 17일 김화 지구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균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8-ㅌ-06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