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상(이보상)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3101177
  • 전몰일자 : 19501226

공훈사항

이보상 이등중사는 1926년 12월 20일 경기도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자 1949년 1월 9일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사관학교 교도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는 조교로서 사관생도 교육에 열성을 다함으로써 군 간부 육성에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육군본부는 보병학교와 육군사관학교 교도대로 서울특별연대를 편성하여 제1사단에 배속하도록 명령했고, 보병학교 학생연대장 유해준 중령은 용산초등학교에서 혼성연대를 편성했다. 서울특별연대는 6월 25일 저녁 무렵 문산에 있는 제1사단에 도착했다. 사단은 육사 교도대를 우전방 제13연대에 배속하고, 보병학교 교도대를 좌전방 제11연대에 배속했다.
육사 교도대는 25일 문산에서 밤새 행군한 끝에 26일 새벽에 파평산 서쪽에 도착했다. 교도대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357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출발했으나, 중턱 부근에서 적으로부터 사격을 받았다. 적이 이미 고지 정상을 점거한 것이었다. 이에 교도대는 고지 서쪽의 무명고지(230m)를 점령했다. 적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여명을 기해 사격을 재개했고, 쌍방 간에 사격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교도대는 적의 감제하에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에서 금곡에서 추진 배치된 포병 제2포대의 105mm 곡사포의 지원으로 겨우 진지를 지탱했다. 그러나 이날 정오 무렵 적 1개 중대가 357고지 남쪽으로 우회하여 교도대의 측후방을 공격하자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교도대장 김응용 소령이 실종된 채 제1중대 선임장교마저도 출혈 과다로 전사하자 육사의 김철수 대위가 교도대를 이끌고 봉일천으로 철수했다.
한편, 육사는 7월 8일 임시 폐교되었으나, 8월 7일 대구의 육군 중앙훈련소 내에 재개교했고, 8월 15일 경남 동래에서 육군보병학교로 합병 개칭되었다. 육군보병학교는 9월 7일 육군종합학교로 개칭되었다. 이후 1951년 10월 30일 경남 진해에 4년제 육군사관학교가 창설되기 전까지 육군종합학교에서 장교들의 양성 및 보수교육을 실시했다.
육군종합학교는 군 간부 교육의 요람이었기에 수차례 적 게릴라들의 습격을 받아 왔다. 1950년 12월 26일 적 게릴라들이 학교를 습격했고, 교도대 소속의 이 이등중사는 이들에 맞서 소대원을 이끌고 솔선수범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상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23판-7면-3585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4-ㄲ-05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