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상(李輔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5390
  • 전몰일자 : 19510601

공훈사항

이보상 일병은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0연대 창설 요원으로 배치되었다.
제11사단은 8월 27일에 영천에서 창설되었으며, 예하에 제9·제13·제20연대로 편성했다. 이보상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 제20연대는 9월 25일에 삼랑진의 육군 제6훈련소를 개편하여 창설되었고, 10월 1일부로 제주도의 육군 제5훈련소로부터 병력을 보충받아 완전히 편성했다. 연대는 10월 초순에 전남 광주로 이동하여 지휘소를 설치하고 지리산 서남쪽인 지역에 대대별로 분산 배치하여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제11사단은 크게 3단계로 구분하여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제1단계 작전은 10월 1일∼25일까지로 훈련과 소규모 토벌작전을 병행한 시기였다. 제2단계 작전은 11월 1일∼12월 31일까지로 소위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개념에 입각해 산간벽지에 있는 민간인들을 소개하고 공비의 보급로를 차단해 적을 기아 상태에 몰아넣어 공비소탕에 주력한 시기였다. 제3단계 작전은 1951년 1월 1일부터 4월 초까지로 공비의 근거지를 파괴하는 데에 전 병력을 집중한 시기였다.
이보상 일병이 소속된 제20연대는 1951년으로 접어들면서 공비 근거지 파괴와 지도 인물 체포를 통해 공비의 재집결을 봉쇄하는 데 집중했고, 2월부터 회문산과 백아산 일대에서 대대적인 공비소탕작전으로 완전히 소멸시키고, 4월 6일에 제8사단에 임무를 인계했다. 이후 사단은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 4월 공세를 맞아 속초-간성 선에서 저지하다가 25일에 양양 북방의 대포리를 연하는 선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사단 장병들은 방어편성을 하고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보상 일병이 소속된 제11사단은 5월 7일에 마등령-저항령-989고지 방향으로 반격하여 5월 11일에 989고지를 점령했다. 그러나 5월 16일에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을 맞아 진격을 멈추고 철수를 거듭하여 대관령-강릉 선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이후 사단은 5월 22일부터 반격하여 강릉-강성대(양양)-향로봉(간성)-건봉산 방향으로 진격하여 6월 9일에는 건봉령을 좌우로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그는 6월 1일에 향로봉을 공격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9판-6면-13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3-ㅊ-03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