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철(李輔喆)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9295894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이보철 상병은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상병은 1953년 1월 27일에 입대한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상병이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제8사단 제21연대는 1953년 2월경 강원도 김화군 수도고지 일대에 주둔하고 있었다. 수도고지는 1952년 9월 중 국군 수도사단과 중공군 간에 여러 차례 공방전이 벌어졌던 해발 600m의 고지이다.
적군은 6·25전쟁의 휴전을 앞두고 철원평야를 빼앗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고지를 공격해왔고 국군은 고지사수를 위해 치열한 방어전을 전개했다. 당시 북한군은 지형조건 상 아군의 고지를 감제할 수 있는 유리한 상황에 있었다. 제8사단은 북한군의 공격 징후를 1953년 초순부터 간파하고 있었고 전초진지 경계를 엄중히 하는 동시에 수색 정찰 활동을 증가시키고 예비대를 전방으로 이동시켰다.
북한군은 1953년 5월 13일 막강한 화력으로 제8사단의 주저항선 및 후방에 걸쳐 포격을 가했고 피아간에 수류탄전과 치열한 사격전이 전개되었다. 이는 국군의 전초진지인 마제형 진지를 점령하여 확보함과 동시에 교란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한때 제8사단의 진지가 피탈되었지만 1953년 5월 18일을 기하여 역습을 개시해 적군의 전초기지를 대다수 파괴하며 북한군으로부터 진지를 사수할 수 있었다.
중공군은 1953년 6월 12일 국군의 수도고지 정면 714고지, 전 주저항선에 걸쳐 포병지원과 함께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제8사단은 1953년 6월 12일부터 중공군의 6월 공세로 6월 18일 백병전을 전개하며 북한군을 완전히 격퇴하고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으로부터 약 1km 후방에 아이슬란드 선에 신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953년 7월 13일 제8사단을 향해 맹렬한 공격을 개시했다. 금성지구의 좌·우측방으로 중공군이 우회함에 따라 제8사단은 중공군에 포위될 위기에 놓였다. 제21연대 장병들은 7월 15일 철수와 동시에 주파리-백암산 일대에 방어선을 전개하여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상병은 1953년 7월 16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철 상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8판-4면-12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6-ㅂ-031)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