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혁(李保赫)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1603042
  • 전몰일자 : 19500821

공훈사항

이보혁 일등중사는 경상북도 경주군 강동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1948년에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그럼에도 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는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1948년 9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보혁 일등중사는 미원 전투에 투입되었다. 당시 상황은 매우 험난하였다. 이 일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7월 13일 미원 북방에서 방어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연대 정면에 집중하고 있는 북한군은 갈령, 화령장, 이화령, 조령, 죽령에서 소백산맥을 신속히 돌파하고 상주와 안동 방향으로 진출할 계획이었다. 북한군 제15사단이 괴산에서 부대정비를 마치고 16일 미원 북방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부흥리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이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이 한때 위기를 맞이하였으나 북한군의 진출을 더이상 허용하지 않고 저지하였다.
이보혁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7월 21일 춘양으로 진출하려던 중 화령장의 상황이 확대되자 보은에서 화령장으로 투입되어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이 일등중사를 비롯한 장병들은 8월 12일부터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13일 다부동 지역에 집결한 후 새로운 방어선을 점령하기 위하여 연대는 신주막 일대의 계획된 진지로 진출하였다. 이 무렵 북한군 제3사단이 약목 일대에서 도하하여 328고지로 공격하고 북한군 제13사단은 도로를 따라 신주막으로 진출 중인 연대 정면으로 접근하면서 일부 병력을 우회시켜 미쳐 연대가 병력을 배치하지 못한 674고지를 선점하였다. 이로써 이 일등중사와 연대는 방어선 중앙이 돌파되고 다부동이 점령당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8월 15일부터 다시 총공격을 재개하였으나 전차 7대를 앞세운 북한군 연대 규모의 공격을 받아 복곡 일대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 일등중사와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이보혁 일등중사는 1950년 8월 21일 다부동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혁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3751 육)을 추서하고 위패(07판-1면-50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1-ㅊ-03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