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호(이보호)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82050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보호 일병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일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초순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3사단도 포항을 탈환한 후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연일을 탈환한 후 총반격 준비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국군은 22일부터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사단은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여 영덕, 울진, 삼척을 차례로 탈환하고, 30일에는 강릉을 탈환했다. 사단은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후 이 일병과 사단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양양, 거진, 장전, 통천을 점령하며 진격했고, 10월 10일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을 점령했다. 사단은 25일까지 송전반도-영흥-고원-마전리-안변을 연결하는 원산 서북방의 외곽선을 확보 후 지역 내 잔적을 소탕했다.
사단은 10월 29일 북진을 계속하기 위해 함흥에 집결 후 11월 4일 신포로 이동했고, 18일 길주로 이동했다. 사단은 길주-백암으로 북진하여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계속 북진을 하는 중에 30일 중공군의 참전으로 철수명령이 하달되었다. 사단은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를 개시하여 구룡포, 묵호, 부산에 상륙했다.
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사단 장병들은 북한군 제2사단을 맞아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당하자, 1951년 1월 2일 평창으로 철수했다. 이 일병은 수색대원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고, 항상 수색작전에 앞장섰다. 그는 1951년 1월 1일 적정 수집 중에 적의 공격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0면-21989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3-ㅈ-01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