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희(李普熙)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19

공훈사항

이보희 순경은 1926년 3월 10일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충남도경 강경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강경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하고 전국 경찰에 전투태세 돌입을 명령했다. 개전 초 절대적으로 전투력이 열세했던 국군은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자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7월 3일까지 한강방어선에서 적의 남진을 저지했다.
7월 4일 수원을 점령한 적은 전차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경부가도를 통해 남진했다. 7월 5일 미 제24사단 스미스대대가 경기도 오산 북방 죽미령에서 북한군과 교전하였으나 적 전차부대에 의해 진지가 돌파되었고, 북한군 제4사단 제5연대의 후속공격으로 북한군과의 첫 교전에서 미군이 패배했다.
충남경찰 비상경비사령관은 예하 경찰관서에 적의 오열과 지방공비를 색출하도록 특별 경계지시를 했다. 충남경찰은 군의 요청에 따라 경부선 주보급로 경비 임무를 수행했으며, 7월 11일 제1대대(충남·서울경찰)를 청양, 제2대대(충남·경기경찰)를 홍산에 배치하여 청양-대천 선에서 군과 함께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7월 12일 공주를 점령한 북한군 제4사단은 일부 병력을 강경·논산으로 우회하여 대전 공략을 시도했다. 7월 15일 오전 10시 강경경찰서는 적의 대병력이 강경으로 이동 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전주로 철수했다가 7월 16일 오후 10시 강경으로 복귀하여 주요 거점에 병력을 배치하였고, 순찰활동으로 지방공비 5명을 생포했다.
7월 17일 새벽 3시 성동교에서 정체불명의 무장괴한 10명을 발견하여 검문 검색한 결과 대한 유격대원으로 확인되자 강경경찰서장은 이들이 경찰과 함께 행동하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이들은 적의 유격정찰대로서 경찰의 연락과 보급을 차단시키고 허위정보를 제공하여 강경경찰을 섬멸하려고 했다. 7월 18일 새벽 4시, 본색을 드러낸 적 유격정찰대는 읍사무소 옥상에서 기관총으로 강경경찰서에 집중사격을 가했고, 이를 신호로 강경 일대의 적은 사방에서 경찰을 포위 공격했다. 18시간의 공방전 끝에 실탄이 바닥난 경찰은 돌파구 개척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서장 이하 66명의 강경경찰서원 전원이 장렬하게 전사했다. 7월 19일 이 전투에 참가했던 이 순경은 적 2명을 사살하며 끝까지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희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ㄹ-05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