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규(李福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01592
  • 전몰일자 : 19501215

공훈사항

이복규 일병은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 이후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시기에, 이 일병은 조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1월 중순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후의 전황은 유엔군이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을 준비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개천 북방의 비호산 일대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물리치고 방어 중인 상황이었다. 비호산 전투 후 사단은 11월 중순 미 제8군이 우익으로 덕천 지역으로 이동했다. 11월 22일 사단은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묘향산을 향해 공격을 개시했으나, 묘향산 남방에서 중공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별 진전이 없었다.
26일 새벽 중공군 제38군과 제42군이 강력한 반격을 시작하면서 사단 우측 제8사단과의 전투지경선 지대가 돌파되었다. 그리고 덕천에 있던 사단사령부도 중공군의 기습을 받고 퇴로가 차단당하게 되었다. 제5연대 제3대대가 중공군의 차단진지를 격파하고 퇴로를 확보한 가운데 제5연대(-)는 일부는 북창으로, 일부는 개천 방면으로 탈출했다. 이후 연대는 미 제8군 철수계획에 따라 12월 3일 승호리 일대로, 6일 신계를 거쳐 시변리로 철수했고, 계속해서 연천을 거쳐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38도선으로 철수한 미 제8군은 김포반도-임진강-화천-양양을 연하는 선을 주저항선으로 선정한 후, 포천-김화 도로를 중심으로 중서부전선은 미군에, 동부전선은 국군에 방어임무를 부여했다. 한편 육군본부는 12월 15일을 기해 국군 제3사단의 방어종심을 보강하고, 유사시 증원부대로 운용하기 위해 홍천에서 정비 중인 국군 제7사단을 춘천으로 이동시켜 육군 예비로 확보하고자 했다.
중공군 제3차 공세(신정 공세)를 시작하기 전에 북한군 제2전선부대가 침투하여 거점 확보를 시도했고, 이들은 방어진지 구축 중이거나 집결 중인 아군 부대들과 조우하여 전투가 빈번히 벌어졌다. 이 일병은 홍천에서 춘천으로 이동 하던 중 12월 15일 적의 기습을 받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0-ㅍ-10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