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규(李復奎)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3584
  • 전몰일자 : 19501223

공훈사항

이복규 일병은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6월경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전입할 당시,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고 제8사단은 전쟁 초반 불리한 전세에 지연전을 펼치며 낙동강 부근까지 후퇴했다.
제8사단은 반격 준비를 마치고 1950년 9월 국군의 총반격 작전에 합류해 10월 3일 서울에 도달하고 1950년 10월 8일 38도선을 통과하여 북한지역 깊숙이 진출하였지만 1950년 11월 9일부터 대대적인 중공군의 공세에 직면했다.
제8사단은 1950년 12월 1일,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쪽의 상동에서 38도선을 향한 철수를 거듭하여 율리에서 수안을 거쳐 신계, 시변리를 경유했다. 토산에 도착한 장병들은 38도선의 북방에 위치한 연천으로 집결하기 위하여 3일간의 휴식을 마치고 1950년 12월 9일 토산을 출발하였다. 임진강의 연안을 따라 연천에 이르는 가도는 양측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강의 대소 지류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고단한 작전지였고 토산 일대는 교량과 도로 약 10개소의 절단으로 중장비와 차륜부대의 이동이 불가했다.
중공군 2개 대대는 이를 이용해 국군의 도하를 방해하고자 토산 동북방 능선 일대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연천을 향해 철수하는 제8사단과 뒤따라오는 국군을 향해 일제히 사격하였다.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 장병들은 병력과 장비가 열세한 와중에 경기도 연천 부근의 요충지인 520고지를 향하여 돌진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열세한 상황에서 적을 추격하였지만, 좌·우측방으로부터 끊임없이 공격하는 북한군을 상대로 방어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제8사단은 치열한 교전을 통해 520고지를 최종적으로 확보하였으나. 북한군은 여전히 520고지 일대를 재탈환하기 위해 지속해서 국군의 방어진지를 침투하며 야간공격을 감행했다.
중공군의 세 번째 공세에서 피아간에 많은 전사자가 발생했고 추후의 공세 전까지 제8사단의 연대는 520고지 일대 능선에 각각 배치되어 산병호를 구축했으며, 날이 저물어도 사주경계에 임했다. 안타깝게도 이 일병은 방어진지를 사수하는 과정에서 총탄에 맞아 1950년 12월 23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규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7판-6면-15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0-ㅈ-04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